"애인에게 채였다." "첫발을 내딛었다." "이거 얼마에요?" "길거리서 친구를 만났다."

우리말이 어렵게 느껴지는 데에는 어미(語尾)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활용법이 까다롭다는 게 큰 부분을 차지한다.

준말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준말의 모습은 조사에서부터 구(句)의 형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가령 장소를 나타내는 조사 '에서'는 '서'로 줄기도 한다.

'길거리서 친구를 만났다''서울서 온 편지' 등에 쓰인 '서'는 '에서'와 같은 말이다.

'그러잖아도'란 말을 낯설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이 말은 '그러하지 아니하여도'란 구가 준 것.이 말이 줄면 '그렇지 않아도'가 되고,또 한 번 줄어 '그러잖아도'가 된다.

따라서 '그러잖아도'와 '그렇지 않아도'는 섞바꿔 쓸 수 있는 말이다.

'애인에게 채였다'란 말을 쓰곤 하지만 실상 '채이다'란 말은 없다.

'채이다'는 '버림받았다'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차다'의 피동형으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차이다'가 바른 말이다.

이 말이 입말에서 '채이다'로 무심코 쓰이는 까닭은 '이'모음 역행동화 때문으로 보인다.

입말에서 아지랑이나 지팡이를 아지랭이,지팽이로 발음하곤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이 같은 '이'모음 역행동화는 현행 맞춤법에서 '냄비'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다).따라서 '채였다'가 아니라 '차였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차이다'는 준말 '채다'로 쓸 수 있다.

이의 과거형은 '채었다'이다. 이 말이 또 줄면 '챘다'가 된다.

결국 '애인에게 차였다/채었다/챘다'가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채였다'는 틀린 말이다.

표준어 규정 중에는 '준말과 본말이 다 같이 널리 쓰이면서 준말의 효용이 뚜렷이 인정되는 것은 두 가지를 다 표준어로 삼는다'는 게 있다.

'내디디다'와 준말 '내딛다'가 이 규정에 해당하는,복수 표준어이다.

'머무르다/머물다,서두르다/서둘다,서투르다/서툴다' 등도 같은 관계다.

주의해야 할 것은 모음 어미가 붙을 때에는 준말의 활용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가지다'의 준말 '갖다'를 활용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갖아,갖아라,갖았다' 따위처럼 모음 어미로는 활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갖고,갖게,갖지만'처럼 자음 어미로 활용하는 것은 아무 제약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비록 '첫발을 내딛어,서울에 머물었다' 따위가 일부에서 쓰이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바른 표기가 아니다.

반드시 '내디뎌,머물렀다'라고 해야 한다.

'이거 얼마에요/얼마여요/얼마예요'도 자주 쓰는 말인데 막상 적으려고 하면 헷갈리는 것들이다.

첫째 것은 틀린 말이다.

둘째,셋째 말은 맞는 표기이다.

우선 '~이어요'가 원래 말이지만 '~이에요'가 워낙 널리 쓰여 둘 다 표준어로 인정했다.

그런데 이들 각각은 윗말에 받침이 없으면 '~여요/~예요'로 준다.

'무엇'이 준말 '뭐'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뭐예요'가 된다.

그 밖에 '뭐에요' '무엇이여요' '무엇이예요'는 모두 잘못 쓴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