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용 사행성 게임방 바다이야기 사태로 불거진 우리 사회의 도박 열풍이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번 바다이야기뿐만 아니라 경마 경륜 경정에다 정선카지노 로또가 등장할 때에도 한바탕씩 홍역을 치렀다. 이번 사태가 종전과 다른 점은 멀리 가야 도박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집 앞에서,심지어 PC를 통해 안방에서까지 도박이 가능해진 세상이 됐다는 데 있다.

도박 열풍은 일차적으로 이를 방조·조장한 정부의 정책 실패에 원인이 있지만 보다 근본 원인은 활력을 잃은 경제상황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된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이 대박·한탕을 노려 급속히 도박에 빠져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렇듯 꼬인 경제로 인해 곪을 대로 곪은 환부가 이번 바다이야기 사태로 터져버린 셈이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대박 열풍

IMF 경제위기는 국민들에게 강한 학습효과를 가져왔다. 우리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은 뒤 회복하는 과정에서 각종 대박 신화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정책과 시대 조류에 편승한 발빠른 대응과 불법·탈법적인 한탕심리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이 벤처 및 코스닥 열풍이다. 일개 벤처사업가가 수천억,수조원대 갑부가 됐고 주식으로 떼돈 번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를 지켜보던 샐러리맨이나 주부들까지 은행 적금을 깨서 너도나도 코스닥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사이비 벤처사업가들과 주가 작전세력이 활개치면서 코스닥 대박신화는 '쪽박 괴담'으로 변질됐다.

뒤 이은 부동산 투기 열풍은 정부가 멍석을 깔아준 결과라 할 수 있다.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빌미로 별로 실효성 없는 초(超)저금리 기조를 장기간 고집했다. 때문에 갈 곳을 잃은 뭉칫돈들은 대거 부동산으로 몰려갔다. 여윳돈이 없으면 은행에서 대출이라도 받아 부동산에 쏟아부었다. 게다가 현 정부가 남발한 각종 개발공약은 '투기의 전국화'를 부채질했다. 그 결과 주거 자체를 도박으로 삼게 한 '부동산 불패,부동산 대박'신화가 온 국민의 뇌리에 강하게 각인됐다.

이런 대박·한탕심리가 주말엔 경마 로또, 주중엔 경륜 경정,그리고 매일 밤 게임방,성인PC방을 전전하는 '도박족'으로 구체화된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특별한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친척,이웃들의 현실이란 점이다.

◆활력 잃은 경제가 주요인

최근 도박 열풍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정부의 사행성 게임에 대한 느슨한 정책과 상품권을 판돈으로 허용한 것이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목된다. 30조원이 발행된 경품용 상품권은 본래 취지가 무색하게 사실상 카지노의 칩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도박 열풍을 냉정히 들여다보면 정책실패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경제가 활력을 잃으면서 정상적인 투자와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저성장의 덫에 빠진 것이 근본요인이다.

이는 중산층의 붕괴,자영업자의 몰락,양극화 심화 등의 참담한 경제 현실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젠 연 4%대 성장도 버거운데다,일부 잘나가는 수출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의 체감 경제성장률은 거의 마이너스 수준이다.

명예퇴직,조기퇴직이 일상화됐고 한창 일할 40,50대에 직장에서 밀려난 이들은 음식점 등의 창업으로 자영업자로 변신했지만 과도한 시장 진입과 내수불황으로 동반 몰락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 경제의 튼튼한 허리였던 중산층이 급속히 와해되고 사회의 양극화가 가속화된 것이다.

도박장을 찾는 사람들의 절반가량이 한달 수입 200만원 이하의 서민들이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더 잃을 것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도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마련이다.

결국 도박에서 개인과 사회,국가를 구하려면 경제가 정상적인 투자활동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념투쟁과 비현실적인 정치구호에 휩쓸려 경제의 중요한 축인 기업 활동이 더욱 움츠러드는 상황이다. 정치에 밀려 허우적거리는 경제 상황이 지속되는 한 '도박 권하는 사회'에서 벗어나기 힘겨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