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한 올 남지 않은 민둥머리에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하얀 얼굴,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기도하는 아이의 모습.'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11~13일 강원도 둔내 유스호스텔에서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색 행사가 열렸다. 한빛사랑회(세브란스병원 소아암 환우회)가 소아암을 앓는 어린이 50여명을 위해 가족,도우미 봉사자 150여명과 함께 여름 캠프를 마련한 것. 모처럼 흰 병실에서 벗어나 즐겁게 놀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지 어린이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죽음이 자신을 기다린다는 두려움도 잊어버린 채 장난 치는 모습은 또래 개구쟁이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이들에게는 희망과 웃음을 주고,부모님들은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힘이 될 수 있는 자리이지요.' 캠프를 주관한 세브란스 소아암 전문의 유철주 교수는 소아암은 성인암과 달라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아이가 소아암 진단을 받는 순간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웃음치료사로 자원봉사 중인 이종진씨는 4년간 뇌종양 치료를 받아 완치된 이선우군의 아버지다

"선우가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믿어지지 않았어요. 제 탓인 것 같아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자살충동까지 느꼈지만,아이의 웃는 얼굴이 저에게 힘이 되었어요." 그는 가족들의 사랑과 격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꿈드림'(회장 정재호 연대 간호대 3년)은 소아암을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한빛사랑회 회원의 청소년 모임이다. 김민우군(양재고 2년)은 감기인 줄 알았다가 '뇌종양'으로 진단받아 2년 만에 완치된 후 도우미로 참가한 열성 회원이다. 김군은 "치료를 받고 2년 후 학교로 돌아갔는데 처음에는 학교 생활에 자신감도 없었고 외롭기만 했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행사는 학교 복귀, 부모 교육 등에 대한 환아 부모와 의료진 간의 대화,연대 봉사동아리 멘토스의 샌드위치 만들기와 가족 앨범 만들기 등 다양한 내용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날 밤. 소아암이 재발되어 올해 3월 하늘나라로 간 박준영군(18)을 생각하는 '회상의 시간'을 가졌다. 숙연한 가운데 박군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모두 눈물을 글썽거렸다. "함께 지내던 친구를 어느 날 다시 볼 수 없을 때 다시 한번 우리는 절망하게 되고 두려워 져요."(남덕우 한강전자공예고 2년) 죽음은 무섭지만 재발 가능성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정경미 교수(연세대 심리학과)는 "부모들은 아이가 모른 채 넘어가기를 원하지만,그냥 지나치면 아이들은 더 두려워하게 된다"며 회상의 시간은 아이들에게 힘들지만 꼭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이 시간은 분명 건강하게 지내는 청소년들도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소아암을 이겨낸 청년들은 '꿈드림'에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중학교 2~3학년 때 '비호지킨성 림프종'이라는 병을 앓았지만 현재 세브란스 소아과 전공의 1년차로 소아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김남균 선생과 초등학교 때 걸린 암을 극복하고 올해 서울대 공대를 입학한 정재엽군은 꿈드림의 희망이다. "우리는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 청소년들과는 다르지요. 세상이 더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요."(정재엽) 힘든 치료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열심히 치료하는 의사 선생님들과 사랑을 실천하는 자원봉사자가 모인 자리에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희망과 꿈이 함께 하고 있었다.

유재연 생글기자(은광여고 2년) clpgg04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