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의 화제다." "장안에 소문이 자자하다."

여기에 쓰인 '장안'은 수도란 뜻으로,서울을 이르던 말이다. 지금은 의미가 더 넓어져 일반명사화해 '시중(市中:도시의 안)'이란 말과 같이 쓰인다.

지명으로서의 장안(長安)은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시(西安市)의 옛 이름이다. 한(漢)나라의 도읍지였으며 이후 수,당나라 때까지 1000년여 동안 수도였던 곳이다. 일부 국어학자나 우리말 운동가들은 이 말을 두고 모화사상에 젖은 옛날 양반들이 '서울 장안'식으로 쓰다가 앞의 말이 탈락하면서 '장안' 하나만으로 서울을 뜻하게 됐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 유래에 비춰볼 때 버려야 할 말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옛 수도 이름인 장안이 서울을 대신해 쓰인 것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조선 중기 허난설헌이 쓴 가사집 규원가(閨怨歌)에는 '장안유협경박자(長安遊俠輕薄子)'란 글귀가 나온다. '서울 거리에서 할 일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행패나 일삼는 건달'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미 16세기께 '장안'이 우리 서울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남의 나라 수도 이름을 들여와 우리의 서울을 대신해 쓰는 세태는 잘못 된 것이라는 지적 역시 꽤 오래됐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다방면의 저술 500여권을 남겼는데,그 중 1819년에 나온 '아언각비(雅言覺非)'는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우리말글 바로쓰기' 지침서다. '바른 말(雅言)을 통해 잘못된 것(非)을 깨닫게(覺) 한다'는 이름 그대로 다산은 이 책에서 일상에서 잘못 쓰는 말 200여가지를 어원적으로 살피고 바른 용법을 제시했다.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항목이 바로 '장안'이다. "장안.낙양(長安. 洛陽)은 중국 두 서울의 이름인데,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취해 서울의 일반적인 이름으로 삼아 의심하지 않고 써 왔다." 고구려의 평양성을 장안성이라고도 한 것을 보면 서울을 장안이라고 칭하게 된 것이 이때부터인 것 같다고 다산은 지적했다.

흔히 쓰는 말은 아니지만 '만호장안(萬戶長安)'이라 하면 '집이 아주 많은 서울'을,'십만장안''팔만장안'이란 말 역시 '사람이 매우 많이 사는 서울'을 가리킨다. 모두 사전에 올라 있는 말로서,장안을 구태여 유래를 따져 버려야 할 말로 처리하기에는 무리일 듯싶다.

다산이 함께 지적한 낙양은 중국 허난성(河南省)의 직할시 '뤄양(洛陽)'으로,이를 우리 음으로 읽은 게 '낙양'이다. 지금은 서울을 대신해 낙양을 쓰던 언어관습은 사라졌고 다만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리다'란 관용구로 우리말에서 자리를 잡았다. 중국 진(晋)나라의 좌사(左思)가 삼도부(三都賦)를 지었을 때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이것을 베낀 까닭에 종이 값이 올랐다는 데서 나온 말로 '어떤 책이 매우 잘 팔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데 쓰인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