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실시된 뉴딜정책은 이른바 혼합경제(mixed economy)의 탄생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정부의 재정지출(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출을 합한 것)은 1920년대 전체 국민소득 가운데 약 13% 선을 유지해 왔으나 1932년 20%를 넘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증가한 뒤,2차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20% 선 아래로 내려오지 못했다. 단순히 정부지출의 규모 뿐 아니라 각종 제도를 통한 규제와 권한의 집중 또한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는 공황을 극복하고 실업과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떠안아야 하는 역할이 증대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경제문제를 해결하는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즈적 사고가 바탕을 이루면서 정부역할에 대한 민간의 기대가 그 만큼 커졌다는 것이 주된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위기상황 뒤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증대되었던 것은 단순히 대공황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Higgs라는 경제사학자는 미국의 경우 몇차례에 걸쳐서 이 같은 현상이 발견되는데 1차세계대전,대공황,2차세계대전 등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았다. 이 경우 정부는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 지출의 규모를 늘리고 정부 개입의 범주를 확대했는데,정부 개입의 원인이 사라진 후에도 정부의 지출 규모와 개입 범주가 줄어들지 않는,따라서 정부의 역할이 마치 계단식으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톱니효과(ratchet effect)로 설명하고 있다.

톱니효과는 본래 소비와 소득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Dusenburry가 도입한 개념이다. 즉 소득이 증가하면 이에 비례해서 소비가 증가하지만,소득이 감소한다고 해서 소비가 감소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소비는 소득의 함수이긴 하지만 소비 수준을 결정하는 데는 또한 기존의 생활수준,소비습관 등이 작용하기 때문에 소득이 감소하더라도 소비가 비례해서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톱니바퀴는 한 방향으로의 움직임이 진행되면 반대방향으로는 톱니의 턱에 걸려서 돌아가지 않는 장치를 말한다. (테니스장의 네트를 설치하기 위해 사용하는 톱니바퀴를 생각하면 된다.)

Higgs는 정부 지출의 규모나 범주 역시 이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위의 그림에서 AB구간처럼 기존의 정부는 정상적인 속도로 정부의 규모를 증대시키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지출 규모나 개입의 범주를 포함한) 정부의 규모는 BC와 같이 급격하게 증대한다.

일단 위기상황에서 벗어나면 정부의 규모는 CD와 같이 안정되다가 감소하겠지만(DE구간),위기상황이 없었을 경우의 규모(정상적인 상태에서 정부 규모가 커진 수준,점선으로 표시된 부분)까지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딜정책도 이러한 경우에 잘 부합되는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민소득 대비 정부 지출의 비중도 큰 폭으로 증가하여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계단형 상승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각종 제도적 정책 역시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농산물 가격을 끌어올려 농민들의 구매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경작 규모의 축소 및 작목할당을 실시한 것이 오늘날에도 그 근간이 유지되고 있고,실업보험 등의 각종 사회보장제도 역시 뉴딜 이후 정착되었다.

농업조정법(AAA)이나 국가공업부흥법(NIRA)과 같이 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을 받아 폐기된 경우도 있지만,1933년부터 1935년 사이에 입법된 상당수의 법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증대되었다.

정부가 들어오기는 쉬워도 일단 들어오면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은,'작은 정부'가 늘상 공염불에 그치는 현실에서 규제 개혁이 의지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