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 상에서는 된장녀 논란이 한창이다.
지난 4월 한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 '된장녀의 하루'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촉발된 이 논란은 인터넷을 타고 급기야 남녀 간의 성대결 양상으로 치달았다.
남성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은 경제적인 능력도 없으면서 허영심에 가득 찬 한 여대생의 하루 일과를 통해 그녀의 속물 근성을 은근히 비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유명 여배우가 광고하는 샴푸로 머리를 감고 트리트먼트를 한다.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집을 나서기 전 아빠에게 온갖 애교를 총동원해 용돈을 긁어낸다.
유명 상표 원피스를 입고 작은 토트 백(tote bag·여성용 손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전공 서적을 겨드랑이에 낄지언정 큰 가방은 사지 않는다.
그게 여대생스러운 거다.
버스를 기다리며 옛 남친의 자가용을 그리워한다.
학교 앞 던킨도너츠에서 커피와 도넛을 사 먹으며 창 밖을 바라본다.
마치 뉴요커라도 된 듯하다.
복학생 선배를 꼬드겨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다.
싸이월드에 올릴 음식 사진을 디카로 찍어 둔다.
시간이 남아 백화점 명품관에서 아이 쇼핑을 한다.
친구들과 결혼 상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3000cc 이상 차를 몰고 키 크고 옷 잘 입는 의사라면 오케이.지금 사귀는 남친은 엔조이 상대에 불과하다.
헬스클럽에 들러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그런 딸이 열심히 공부하고 온 줄로만 안다."
왜 하필 '된장녀'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는 여자란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인터넷 상에서 된장이 '젠장'이라는 욕설을 뜻하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여성을 조롱한 표현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된장녀가 뜨자 이번엔 반대로 된장남,고추장남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된장남은 된장녀와 비슷한 부류의 남성을 의미하고 고추장남은 된장녀와는 정반대 개념으로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궁상스럽고 치졸한 남성을 지칭하고 있다.
'된장녀의 하루'를 패러디한 된장남,고추장남의 이야기도 인터넷 상에서 계속 떠돌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20대 대학생은 된장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한 언론사가 서울지역 남녀 대학생 2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된장녀 또는 된장남이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37%가 "둘 다 많이 존재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남학생 121명 중 29%가 "여학생들은 대부분 된장녀라고 보면 된다"고 답한 반면 여학생(총 128명)은 8%만이 이에 동의해 된장녀 논란에 대한 남녀 간 극명한 인식차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럼 이제 된장녀 논란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된장녀,된장남,고추장남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면 이들은 풍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데도 있는 척하거나 또는 너무 '빈티'를 내는 것이 놀림거리가 된 것이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이들 세 인간상은 현재 우리나라 20대가 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20대는 중·고교생 과외 수입과 안정적인 취업 등으로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대로 들어서자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고착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청년 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아울러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갈수록 활발해지면서 20대 남성의 '좋은 일자리(decent jobs)'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물론 20대 남성의 일자리 감소가 여성의 책임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한 청년 실업이 그 주된 원인이지만 이들 20대 남성의 분노는 엉뚱하게도 그 실체가 모호한 사회가 아니라 만만한 여성을 향하고 있다.
더구나 군 복무로 인해 여성보다 2년을 더 희생당했다는 이들의 피해 의식은 이러한 분노를 더욱 돋우고 있다.
특히 페미니스트(feminist)라고 불리는 여성 인권운동가에 대해 이들 20대 남성은 강한 증오를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증오는 주로 인터넷 상에서 표출되는데 페미니스트들이 남성들의 군 복무와 같은 희생에 대해서는 일부러 눈 감은 채 오직 여성의 복리 증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1999년 공무원 시험 등에서 군필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군 가산점 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았을 당시에도 인터넷 상에선 이를 놓고 남녀 간의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됐었다.
이후에도 군 가산점 제도의 부활이나 여성 징병제 등과 같은 민감한 주제가 언론 상에 가끔씩 등장할 때면 꼭 비슷한 남녀 간의 대결 구도가 펼쳐지곤 했다.
거기에 덧붙여 남녀 간의 서로에 대한 이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번 된장녀 논란을 키우는 데 한몫 했다.
실제로 '된장녀의 하루'에 나온 상표들은 명품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 많다.
그 글에 나온 던킨도너츠도 사실 중·고교생조차 어렵지 않게 간식을 즐기는 곳 중 하나다.
결국 된장녀는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어떤 남성이 평범한 20대 여성을 자신만의 관점에서 악의적으로 재해석해 낸 존재란 지적도 있다.
이러한 된장녀가 같은 남성들에 의해 인터넷을 타고 계속 확대 재생산되면서 논란이 한층 가열된 것.한 누리꾼은 "된장녀가 실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텐데 스타벅스 커피만 마셔도 된장녀라 칭하는 것은 과도하게 왜곡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누리꾼은 "만약 내가 여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여자 또한 남자를 진실로 이해하고 있다면 저런 특징들을 된장녀,고추장남으로까지 비하하며 서로 욕할 이유가 있을까?"라며 이번 논란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호기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hglee@hankyung.com
지난 4월 한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에 '된장녀의 하루'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촉발된 이 논란은 인터넷을 타고 급기야 남녀 간의 성대결 양상으로 치달았다.
남성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은 경제적인 능력도 없으면서 허영심에 가득 찬 한 여대생의 하루 일과를 통해 그녀의 속물 근성을 은근히 비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유명 여배우가 광고하는 샴푸로 머리를 감고 트리트먼트를 한다.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집을 나서기 전 아빠에게 온갖 애교를 총동원해 용돈을 긁어낸다.
유명 상표 원피스를 입고 작은 토트 백(tote bag·여성용 손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전공 서적을 겨드랑이에 낄지언정 큰 가방은 사지 않는다.
그게 여대생스러운 거다.
버스를 기다리며 옛 남친의 자가용을 그리워한다.
학교 앞 던킨도너츠에서 커피와 도넛을 사 먹으며 창 밖을 바라본다.
마치 뉴요커라도 된 듯하다.
복학생 선배를 꼬드겨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다.
싸이월드에 올릴 음식 사진을 디카로 찍어 둔다.
시간이 남아 백화점 명품관에서 아이 쇼핑을 한다.
친구들과 결혼 상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3000cc 이상 차를 몰고 키 크고 옷 잘 입는 의사라면 오케이.지금 사귀는 남친은 엔조이 상대에 불과하다.
헬스클럽에 들러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그런 딸이 열심히 공부하고 온 줄로만 안다."
왜 하필 '된장녀'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는 여자란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인터넷 상에서 된장이 '젠장'이라는 욕설을 뜻하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여성을 조롱한 표현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된장녀가 뜨자 이번엔 반대로 된장남,고추장남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된장남은 된장녀와 비슷한 부류의 남성을 의미하고 고추장남은 된장녀와는 정반대 개념으로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 궁상스럽고 치졸한 남성을 지칭하고 있다.
'된장녀의 하루'를 패러디한 된장남,고추장남의 이야기도 인터넷 상에서 계속 떠돌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20대 대학생은 된장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최근 한 언론사가 서울지역 남녀 대학생 2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된장녀 또는 된장남이 실제로 존재하느냐는 질문에 37%가 "둘 다 많이 존재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남학생 121명 중 29%가 "여학생들은 대부분 된장녀라고 보면 된다"고 답한 반면 여학생(총 128명)은 8%만이 이에 동의해 된장녀 논란에 대한 남녀 간 극명한 인식차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럼 이제 된장녀 논란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된장녀,된장남,고추장남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능력이 있다면 이들은 풍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데도 있는 척하거나 또는 너무 '빈티'를 내는 것이 놀림거리가 된 것이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이들 세 인간상은 현재 우리나라 20대가 처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20대는 중·고교생 과외 수입과 안정적인 취업 등으로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거쳐 2000년대로 들어서자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고착화되고 있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청년 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아울러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갈수록 활발해지면서 20대 남성의 '좋은 일자리(decent jobs)'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물론 20대 남성의 일자리 감소가 여성의 책임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인한 청년 실업이 그 주된 원인이지만 이들 20대 남성의 분노는 엉뚱하게도 그 실체가 모호한 사회가 아니라 만만한 여성을 향하고 있다.
더구나 군 복무로 인해 여성보다 2년을 더 희생당했다는 이들의 피해 의식은 이러한 분노를 더욱 돋우고 있다.
특히 페미니스트(feminist)라고 불리는 여성 인권운동가에 대해 이들 20대 남성은 강한 증오를 숨기지 않는다.
이러한 증오는 주로 인터넷 상에서 표출되는데 페미니스트들이 남성들의 군 복무와 같은 희생에 대해서는 일부러 눈 감은 채 오직 여성의 복리 증진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1999년 공무원 시험 등에서 군필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군 가산점 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았을 당시에도 인터넷 상에선 이를 놓고 남녀 간의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됐었다.
이후에도 군 가산점 제도의 부활이나 여성 징병제 등과 같은 민감한 주제가 언론 상에 가끔씩 등장할 때면 꼭 비슷한 남녀 간의 대결 구도가 펼쳐지곤 했다.
거기에 덧붙여 남녀 간의 서로에 대한 이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번 된장녀 논란을 키우는 데 한몫 했다.
실제로 '된장녀의 하루'에 나온 상표들은 명품이라고 하기에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 많다.
그 글에 나온 던킨도너츠도 사실 중·고교생조차 어렵지 않게 간식을 즐기는 곳 중 하나다.
결국 된장녀는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어떤 남성이 평범한 20대 여성을 자신만의 관점에서 악의적으로 재해석해 낸 존재란 지적도 있다.
이러한 된장녀가 같은 남성들에 의해 인터넷을 타고 계속 확대 재생산되면서 논란이 한층 가열된 것.한 누리꾼은 "된장녀가 실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텐데 스타벅스 커피만 마셔도 된장녀라 칭하는 것은 과도하게 왜곡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누리꾼은 "만약 내가 여자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여자 또한 남자를 진실로 이해하고 있다면 저런 특징들을 된장녀,고추장남으로까지 비하하며 서로 욕할 이유가 있을까?"라며 이번 논란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이호기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