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칼럼] 잠재성장률, 그 오해와 진실

☞ 한국경제신문 7월25일자 A35면


요사이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정책당국의 시각이 너무 태평스러운 것 아니냐는 느낌을 받는다.

시중의 경기가 좋다 나쁘다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과연 한국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 발전을 이뤄나갈 수 있느냐에 대한 판단과 대응이 지나치게 느긋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잠재 성장률(潛在成長率)이 4%대 초반으로 떨어졌다는 게 한국은행 총재의 얘기다.

물론 정부는 5%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다수 민간 연구기관들이 4%대로 떨어졌다고 주장하고 있고 또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잠재 성장률이란 물가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란 점에서 보면 성장 속도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때문에 잠재 성장률이 4%대로 주저앉은 게 맞다면 그 이상 성장을 달성하면 물가 불안이 야기될 소지가 크다.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5% 이상 성장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권오규 부총리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잠재 성장률이 왜 떨어지는가를 생각해 보면 정부가 낙관적으로 생각해야 할 계제(階梯)는 결코 아니다.

우선 성장 잠재력이라는 개념을 함께 생각해 보자.주어진 부존 자원과 활용도,수요 기반,그리고 기술 발전 등을 고려해 얻어낼 수 있는 공급 측면의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생산에 필요한 요소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높아질 수 있다.

말하자면 기술 개발이나 생산성 향상,노동 인력 및 자본의 활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장 잠재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잠재 성장률과 성장 잠재력이 차이 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생산 요소(生産要素)들을 최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정책이나 제도 탓이다.

예컨대 시중의 유동성은 풍부하고 기업들의 자금 사정도 나쁘지는 않다.

그런 여유 자금들이 생산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부동산 등으로 몰려 다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정책 실패 탓 아닌가.

대기업 투자규제 완화는 왜 그렇게 주저하는가.

설비 투자가 늘어나면 곧바로 잠재 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데도 말이다.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성장 산업으로 서비스산업 육성(育成)을 들고 나온 것은 정부였다.

그런데 지금 얼마나 잘 추진되고 있는가.

온갖 규제로 인해 돈 있는 사람들이 투자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를 그대로 놔두고 서비스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구호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잠재 성장률이 낮기 때문에 지금 정도의 성장 속도가 최선이라는 것은 맞지 않다.

잠재 성장률을 높이는 일이 먼저다.

경제 정책은 당장의 현안에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미래의 국민생활 향상을 염두에 두고 추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자세다.

지난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한국 경제의 세 가지 시나리오'를 보면 향후 10년 동안 잠재 성장률이 2.6%로 낮아지면 경제 규모나 소득 수준이 지금보다 퇴보하게 되고 4.1%를 유지하면 현 상태에서 답보를 면치 못할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한 6.3%는 돼야 '국내총생산 세계 10위,1인당 국민소득 세계 26위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는 도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며칠 전 한국은행 주최로 연구기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경제동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성장잠재력 하락을 걱정했다고 한다.

심지어 정부가 고령 사회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경우 5년 후에는 잠재 성장률이 1%대로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경제의 퇴보가 내다보이는 상황이다.

그런 데도 정부는 긴장하는 기색이 없고 생산 주체인 기업들의 기를 살려 주기는커녕 닦달에 여념이 없다.

투자 의욕을 부추길 규제 개혁에는 그토록 인색하기 짝이 없으니 그 속내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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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력 관리하듯 경제도 관리해야 ]

어렵다고들 여기는 경제도 사람의 몸에 비유하면 한결 이해하기 쉽다.

사람이 건강하게 체력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선 적절한 운동과 영양 보충,숙면 등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국가 경제도 견실하게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적절한 투자와 왕성한 기업 활동,합리적인 소비가 필수적이다.

어느 나라든 경제란 한 해만 먹고 살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대대로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도록 꾸준히 유지·발전시켜야 할 숙제다.

이런 관점에서 잠재 성장률은 국가 경제의 중·장기적인 '기본 실력' 또는 '기초 체력'을 의미한다.

예컨대 평균 시속 140km대 공을 던지던 투수가 무리해서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계속 던진다면 어깨가 성하기 어렵다.

반대로 구속이 130km에도 못 미친다면 몸 어딘가 이상이 있다는 신호다.

이 때 투수는 국가 경제,팀의 감독·코치는 정부 정책당국으로,야구경기 자체는 국민들의 살림살이로 비유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투수가 실력은 있는데 정작 경기에선 제 실력을 못 낸다면 감독은 그 원인을 찾아내 고치고 다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최종 목표는 무조건 150km 이상 강속구 투수를 만드는 게 아니라 경기에 승리하는 것이고 다음 시즌에도 투수가 무리 없이 잘 던지게 하는 것이다.

이계민 칼럼은 우리 경제의 잠재 성장률이 4%대 초반으로 떨어졌다는 경제 전문가들의 경고에 정책당국이 너무 태평스럽다고 비판한다.

경제의 기초 체력이 떨어져 발전이 아니라 퇴보가 예상되는 상황인 데도 정책당국은 경제의 핵심 주체인 기업들의 기를 죽이고 투자 의욕을 꺾는 규제를 고치는 데 너무 인색하다고 꼬집는다.

잠재성장률 하락을 깨닫지 못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야구 감독이 경기에 이길 뜻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수들(각 경제주체)이 실전에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지휘하는 역할은 감독의 몫이다.

국가 경제에서 실력에 맞지 않는 과속 성장도 문제이지만 실력에 못 미치는 저속 성장은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생산 요소들을 최적으로 활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정책이나 제도를 고쳐야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고 수출이 늘어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가 성장하게 된다.

기업들이 투자하려 해도 '이것은 하지 마라,저것은 안 된다'는 식의 규제로 묶여 있다.

기업을 불법·탈법의 온상쯤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조장해 놓고 말로만 왕성한 기업 활동을 주문하는 식이다.

경제는 말이나 구호만으론 결코 안 된다는 점에서 이계민 칼럼은 정부에 발상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