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의 원인과 진행과정에 대한 경제이론적 해명을 둘러싸고 거시경제학의 양대 학파 사이에 끊임없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느 쪽 견해가 옳은 것인가, 혹은 더 옳은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일도양단 식의 결론이 어렵다. 다만 최근 들어 양측의 견해를 조화시켜 수용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생겨나고 있다.

양측 견해를 종합하려는 시도는 우선 물가하락의 경제적 효과에서 대공황이 심화된 요인을 찾고자 한다.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극심한 경제적 폐해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대단히 적극적인 정책을 수행하는 것을 흔히 보아 왔다. 그러나 물가하락(디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2000년대 초반 세계경제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한때 술렁거린 적이 있다. 이때 사람들은 대공황이 다시 엄습하는 게 아닌가 하고 겁을 먹었다.)

물가하락의 경제적 효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긍정적인 효과다. 물가가 하락하면 사람들의 실질소득이 증가한다. 물가하락은 바로 돈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정소득자들의 경우 같은 돈을 받아도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늘어나고, 따라서 가만히 앉아서 월급이 늘어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실질소득이 증가하면 당연히 소비가 증가할 것이고,소비증가는 국민소득의 증가,즉 경제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물가하락의 두 번째 효과인 부정적 효과 또한 만만치 않다. 우선 물가가 하락하여 돈의 가치가 높아지면 실질소득이 증가할 뿐 아니라 실질부채도 증가한다. 컴퓨터 한 대의 가격에 맞먹는 1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컴퓨터 가격이 50만원으로 떨어지게 되면 이제 컴퓨터 두 대 가격에 상당하는 정도로 빚이 늘어나는 것이다.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나는 데도 소비를 늘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따라서 실질부채의 증가는 소비감소를 통해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부정적 효과는 또 있다. 물가하락은 물가하락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을 통해 실질금리의 상승을 초래한다. 실질이자율은 명목이자율에서 예상물가상승률을 뺀 것을 말한다. (이를 공식으로 쓰면 r=i-x가 된다. 여기서 왜 그냥 물가상승률이 아니고 '예상' 물가상승률을 빼야 하는지는 졸저 '통계와 함께 배우는 경제학' p.97 참조) 따라서 대공황 초기에 물가하락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당분간 물가하락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되고,위의 공식에서 x가 음수가 되므로 실질이자율은 올라가게 된다. 실질이자율이 상승하면 당연히 투자는 줄어들게 되고 결국은 경제가 위축되게 된다.

특히 케인스는 이 같은 투자의 감소가 대공황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그렇게 보면 물가하락의 투자감소 효과가 상당히 컸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공황기 미국의 민간투자는 1929년 162억달러 수준에서 1932년 10억달러 수준으로 급감했다.

대공황 당시 물가하락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는 어느 것이 더 컸을까. 미국은 1920년대 전후 복구의 붐을 타고,주택건설과 내구소비재의 판매가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의 경우가 모기지론(주택금융)이나 할부금융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당시 가계부채의 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 상당한 수준에 있었으며,투자감소라는 부정적 효과와 더불어 물가하락의 부정적 효과가 매우 컸을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이러한 물가하락은 왜 발생했던 것일까. 이 부분에서 통화론자들의 설명을 들을 필요가 있다. 전회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20년대 말 증시의 활황이 거품의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는 통화증발을 억제하는 긴축정책을 시행했고 이것이 경기침체와 물가하락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일단 물가하락이 발생하자 위에서 설명한 부정적 효과의 누적으로 공황이 심화되었고 여기에 정부가 공황을 되돌릴 만한 강력한 통화정책,재정정책을 시행하지 못함으로써 대공황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