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을 밤잠 설치게 하던 월드컵은 끝났다. 국가대표팀은 비록 16강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이번에도 '붉은악마'를 비롯한 우리의 응원 열기는 세계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그런데 여기서 '붉은악마'는 띄어 써야 할까, 붙여 써야 할까. 혹여 글쓰기에서 띄어쓰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이는 오산이다.

'선거전(選擧戰)'과 '선거 전(前)'이 구별되지 않고 '큰집(아우가 맏형의 집을 이르는 말)'과 '큰 집(집의 규모를 가리키는 말)'이 뒤섞여 의미전달에 실패하기 십상이다. '사회주의적자립적민족경제'란 말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말을 이렇게까지 붙여 쓰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북한에선 오히려 이게 규범이다. 북한의 맞춤법은 나름대로 근거를 두고 만들어졌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에겐 비능률적인 방식으로 보인다.

'붉은악마'는 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졌고 아직 사전에 오른 말도 아니므로 '단어별로 띄어 쓴다'는 맞춤법 규정에 따라 '붉은 악마'로 띄어 쓰면 그만이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한 단어로 붙여 쓰고 싶다는 게 문제다. 우리말에는 이처럼 단어화하진 않았지만 단어 사이에 휴지(休止)가 잘 느껴지지 않아 붙여 쓰기 쉬운 말들이 꽤 있다. '공적 자금/공적자금,미국계 투자은행/미국계투자은행,적립식 펀드/적립식펀드,통신용 반도체/통신용반도체,알 권리/알권리,검은 돈/검은돈,검은 손/검은손,큰 손/큰손,젊은 층/젊은층,젊은 이/젊은이.' 이 가운데 단어는 '검은돈,검은손,큰손,젊은이'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규범적으로는 띄어 써야 맞는다. 하지만 북한에서 '적(的),계(系),용(用),형(形/型),식(式),급(級),성(性)' 따위의 접미사가 붙어 연결되는 말은 모두 붙여 쓴다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사람에 따라 띄어 쓰는 게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검은손'(흉계를 품은 손길. =魔手) '검은돈'(뇌물의 성격을 띠거나 기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주거나 받는 돈)은 '검다(黑)'란 의미를 벗어나 단어가 된 말이다. 수사적으로는 전의(轉義)에 해당하며 구체적으로는 환유 또는 은유를 거친 단어다. 하지만 이마저도 비교적 최근(2004년 '금성판 훈민정음국어사전')에 와서야 단어로 대접받았다. '큰손'도 마찬가지. '큰 손'은 손의 크기를 두고 하는 말이지만 '큰손'은 '증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은 거래를 하는 사람이나 기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붉은악마'도 단순히 색깔을 나타내는 의미의 '붉은∨악마'가 아니라 국가대표 축구팀을 응원하는 응원단을 지칭하는 상징어로서 단어화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사전에 오른 말은 아니다. 이런 말들은 그 사용 빈도나 지역적 역사적 계층적 분포 등에서 충분한 세력을 갖췄다고 판단될 때 비로소 단어로 승격하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