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개,개부심,한맛비,그믐치,먼지잼….

낯설지만 어딘지 들어본 듯하기도 한 이 말들은 비(雨)를 가리키는 우리 고유어이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올 장마는 이달 중순께까지 이어질 모양이다.

여러 날을 지루하게 비가 오는 것을 '장마'라 하고 그 비를 '장맛비'라 한다.

이럴 땐 날이 대개 흐리고 축축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궂은비'라고도 한다.

계절에 관계없이 끄느름하게 오래 오는 비는 다 궂은비다.

여러 날을 계속해 많은 비가 오기 때문에 '큰비'라고도 한다.

하늘에 의지해 농사를 지어야만 했던 우리 민족은 비를 가리키는 수십 가지 이름을 남겼다.

소나기를 비롯해 보슬비,이슬비,가랑비,안개비,장대비,여우비,실비,억수,웃비,단비,약비,발비,여기다 한자어까지 합치면 족히 40~50개는 된다.

비 가운데 가장 약하게 내리는 것을 '는개'라고 한다.

안개처럼 보이면서 이슬비보다 가늘게 내리는 비이다.

는개는 낭만적 어감을 띠는 말이라 문인들에겐 종종 소재가 되곤 하지만 일상에선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이슬비는 말 그대로 이슬처럼 내리는 비.는개보다 굵고 가랑비보다는 가늘다.

보통 가늘게 내리는 비를 두루 일러 가랑비라고 하는데,그래서인지 여러 비 가운데 범위가 가장 넓다.

보슬비(부슬비)나 실비도 가랑비의 일종이다.

'가랑'은 고어에서 '안개'를 뜻하는 말이었듯이 가랑비는 안개비라는 말도 갖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라고 하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계속되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진다'는 뜻이다.

가랑비가 바람 없이 조용하게 내리면 보슬비다.

부슬비는 '보슬비'의 큰말.보슬비와 부슬비는 또 '가는비'의 한 가지다.

사전에 가는비가 올라 있다.

그렇다고 '굵은비'도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가는비'는 단어이지만 '굵은비'란 낱말은 없으므로 쓸 때는 '굵은 비'로 띄어 써야 한다.

'큰비'도 한 단어이므로 붙여 쓴다.

여우비는 맑은 날에 잠깐 오다 그치는 비이다.

소나기는 갑자기 세차게 내리다가 곧 그치는 비.소낙비와 함께 복수표준어이다.

물을 퍼붓듯 세차게 내리는 비를 '억수'라 하고 장대같이 굵은 빗줄기로 쏟아진다고 해서 '장대비'이다.

빗방울의 굵기를 기준으로 보면 '는개<이슬비<가랑비<장대비' 순으로 세차진다.

'개부심'은 장마로 큰물이 난 뒤, 얼마 동안 멎었다가 다시 비가 내려 명개를 부시어 내는 일,또는 그 비를 가리킨다.

'한맛비'는 부처의 설법이 모든 중생에게 고루 끼치듯 비가 온갖 초목을 골고루 적셔 아름답게 한다는 뜻을 담은 말.'먼지잼'은 겨우 먼지나 자게 할 정도로 조금 오는 비를 나타내며 '그믐치'는 음력 그믐께에 오는 비이다.

이런 감칠맛 나는 고유의 말을 자주 써야 그 힘이 커지고 우리말도 오른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