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지언들에 의한 대공황의 설명의 하나로 소비 감소로부터 그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 가운데 또 하나는 실질부채의 증가가 있다.

물가가 하락하면 실질소득이 증가하기 때문에 소비가 늘어나고 생산이 증가할 수 있지만,똑같은 논리로 실질부채도 증가한다.

1929년과 1930년 사이 미국 가계의 평균 부채는 20% 정도 증가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20년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후 복구와 기술발전 등으로 붐을 이루었고,이에 따라 주택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대부분의 가계는 주택을 구입하거나 지을 때 부동산대출(mortgage loan)을 이용했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내구재 소비가 크게 늘었는데,대부분의 경우 할부금융이 많이 이용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가계의 부채가 늘어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물가 하락으로 이러한 가계부채의 실질 규모가 증가했던 것이다.

케인지언들의 설명 가운데 두 번째는 투자의 감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점에 대해서는 케인즈가 이른바 투자의 한계효율성이 감소함으로써 투자가 위축되어 대공황을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가는 미래에 발생하는 수익의 흐름을 주관적 기준으로 할인해서 평가하고 이를 현재의 이자율과 비교함으로써 투자 수준을 결정한다고 케인즈는 보았다.

여기서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이 높아지게 되면 기업가는 미래의 수익을 더 많이 할인해서 낮게 평가할 것이고,따라서 현재의 이자와 비교했을 때 수익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여 투자를 줄이게 되는 것이다.

케인즈는 대공황 시기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서 투자가 큰 폭으로 감소했고,32년에서 33년 사이에는 투자증가율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정도였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이 공황을 대공황으로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지출의 경우는 어떠한가.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정부는 당연히 경기회복을 위해 적자재정을 편성함으로써 재정팽창정책을 써야 한다.

대공황 초기 미국 정부는 이 같은 논리에 따라 적자재정을 편성했다.

1929년 미국 정부는 13억달러의 재정흑자를 기록했으나,1930년부터는 지출 증가와 조세감면을 통해 적자재정을 편성하여 재정적자가 32년에는 27억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1932년 6월 재정적자의 증가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대규모 조세 증대로 정책을 전격적으로 전환했다.

케인지언들은 이 같은 조치가 심각한 불황을 대공황으로 전환시킨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정부지출이 대공황의 원인이 되었다거나 대공황 초기에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주장은 아니지만,보다 적극적으로 정책을 시행했다면 상황이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케인지언들의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케인지언들은 순수출 또한 지출 측면에서 대공황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순수출은 1928년에 약 10억달러에 달했지만 이후 줄곧 감소하여 1936년 3300만달러 수준까지 하락했다.

순수출이 감소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의 수출대상국이었던 유럽 나라들의 수입 여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영국의 경우 1925년 금본위제를 부활시키면서 파운드화의 가치를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경기침체가 발생하여 수입여력이 감소했다.

독일의 경우 전후 배상금 지급이 걸림돌이었던 만큼 미국으로부터의 원조가 중요했지만 미국이 주식시장의 붐으로 인해 지원을 줄여나갔던 것이 수입여력을 감소시켰다.

두 번째는 경제민족주의의 영향으로 각국이 관세를 인상하면서 전반적으로 국제무역 규모 자체가 줄어든 것을 꼽을 수 있다.

국제무역규모는 1929년 10월 2966억달러 수준이었지만 1933년 2월에는 944억달러로 꾸준히 감소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순수출도 1929년 8억달러를 넘던 것이 33년에는 3분의 1 수준 아래로 떨어졌다.

물론 이러한 순수출의 감소가 대공황에 미친 영향은 소비나 투자에 비해서는 약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택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