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 양봉진 비상임 논설위원.YSK 대표 >
☞한국경제신문 6월26일자 A39면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국내 굴지의 서울아산병원이 새 병동을 짓기 위해 땅을 파고 골조를 올리느라 바쁘다.
새 병동을 짓지 않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병원 책임자는 '고속철도(KTX)와 효심(孝心)'이라는 명제가 빚은 우리사회의 아이러니라고 분석한다.
KTX를 타면 몇 시간 내에 서울의 병원에 갈 수 있고 또 국내 최고의 명의(名醫)를 만날 수 있다는 노부모들의 기대감을 외면한 채 지방의사들 손에 노부모를 맡기려는 '강심장(?)' 아들딸은 없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관심사인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크게 기여해야 할 KTX가 의료부문에서는 역설적으로 '서울 쏠림현상'을 부추기며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됐건 타계한 아버지를 그리며 지방의 한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은 우리 의료시장의 굴절현장을 생생히 투영한다.
"아버님께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시어 국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서울의 한 병원을 찾았다.
예약 시간에 맞춰 갔지만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대기하는 동안 아버님은 앉아 계시지도 못하고 병원 맨 바닥에 자꾸 드러누우셨다.
의사선생님과 대면하게 됐지만 가슴에 큰 주먹 같은 게 만져진다는 아버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의사는 '보름 후' X레이 촬영일자와 다음 진료일 예약만 잡아주고 옆방 환자를 보러 갔다."
그의 글은 이어진다.
"꽉 짜인 예약환자들 때문인지 그 의사는 아버지의 가슴 한번 만져 보지 않았다.
그 다음 날 너무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동네 한방 의료원을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고 난 의사는 나를 불러 간암 말기라고 말했다.
아버님은 보름 후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한국사회는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다.
'고령화 소요연수'(65세 이상 인구비율이 7%에서 14%로 느는 데 소요되는 시간)는 한국이 18년으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다.
프랑스의 경우 115년이 걸렸고 미국과 독일이 각각 75년과 45년이 걸렸다.
노령화에 따른 의료부문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료산업 경쟁력은 미국 대비 26%,독일대비 33%,일본대비 38% 수준에 불과하다.
국민의료비를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해 살펴봐도 미국(14.6%),독일(10.9%),프랑스(9.7%)에 비해 크게 밑도는 5.3%에 불과하다.
대안은 없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의료시장 개방에 그 기대를 건다.
시민단체들은 의료비 상승과 의료 양극화를 이유로 시장개방에 반대한다.
물론 의료의 공공성 및 국가별 제도의 상이함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의료부문의 개방논의가 다른 부문에 비해 부진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135개 WTO 회원국 중 2003년 6월까지 (의료부문) 개방양허안을 제출한 회원국은 25개국에 불과하며 외국인 직접투자를 허용하는 국가는 40개국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인천경제특구에 2008년 600병상 규모의 '뉴욕장로회(Presbyterian)병원'의 개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특구지역에 등장할 이 외국계 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의 수가적용을 받지 않으며 다양한 영리행위 및 이익배당지급 및 송금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특혜시비가 이어질 건 뻔하다.
때맞춰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 협상의 본격 시동은 결국 의료시장뿐 아니라 모든 서비스시장을 개방대세에 내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외국변호사를 '변호사'로 부르기를 거부하며 그저 '(해당국)법'을 자문하는 자문사(consultant) 정도로 취급하려는 텃세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이다.
"한국인들은 그들 유전자 속에 개방화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 외국기자의 촌평을 되새겨 볼 때다.
bjyang@leeinternational.com
< 교육 개방과 함께 '뜨거운 감자' >
교육시장과 더불어 의료서비스 시장 개방 역시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시장 개방론과 불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선 개방론자들은 우리나라 의료산업 경쟁력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취약한 만큼 시장 개방으로 경쟁을 촉진시켜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국가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자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각국의 최근 3년간 1인당 의료기관 시설 투자비를 비교하면 미국이 218달러,일본이 252달러,독일이 213달러인 반면 우리나라는 94달러에 그쳤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도 5.6점으로 독일 7.8점, 프랑스 7.1점, 미국 6.8점 등에 비해 크게 낮았다.
양봉진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의료시장 개방을 지지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양 위원은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의 낮은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를 들며 글을 시작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례를 현장감있게 묘사하는 방법은-그 예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전제 하에-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아주 효과적이다.
반면 의료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의료시장 개방이 의료 서비스 질을 양극화시키고 중소병원을 도태시켜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우려한다.
병원들이 이윤이 많이 남는 고급 서비스를 육성하는데만 치중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 체계도 뒤흔들려 의료서비스 이용에도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거대한 사회혼란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물론 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일각의 공포감은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자유무역’이 강자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 방편으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
자유 무역은 분명 ‘사회 전체의 부’를 증진시키고 풍요를 촉진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찰적 갈등도 없지 않고 또 손해보는 계층이 생기는 것도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자유무역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시작됐다면 변화의 대열에서 낙오하는 ‘소수의 피해자’들을 어떻게 배려할 것이냐를 놓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 보다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사회적 혼란과 인간적 고통을 보듬고 전체의 이익을 도모할 ‘묘안’을 함께 생각해 보자.
김혜수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6월26일자 A39면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국내 굴지의 서울아산병원이 새 병동을 짓기 위해 땅을 파고 골조를 올리느라 바쁘다.
새 병동을 짓지 않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병원 책임자는 '고속철도(KTX)와 효심(孝心)'이라는 명제가 빚은 우리사회의 아이러니라고 분석한다.
KTX를 타면 몇 시간 내에 서울의 병원에 갈 수 있고 또 국내 최고의 명의(名醫)를 만날 수 있다는 노부모들의 기대감을 외면한 채 지방의사들 손에 노부모를 맡기려는 '강심장(?)' 아들딸은 없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의 최대관심사인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목표에 크게 기여해야 할 KTX가 의료부문에서는 역설적으로 '서울 쏠림현상'을 부추기며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됐건 타계한 아버지를 그리며 지방의 한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은 우리 의료시장의 굴절현장을 생생히 투영한다.
"아버님께서 가슴 통증을 호소하시어 국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서울의 한 병원을 찾았다.
예약 시간에 맞춰 갔지만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대기하는 동안 아버님은 앉아 계시지도 못하고 병원 맨 바닥에 자꾸 드러누우셨다.
의사선생님과 대면하게 됐지만 가슴에 큰 주먹 같은 게 만져진다는 아버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무심한 의사는 '보름 후' X레이 촬영일자와 다음 진료일 예약만 잡아주고 옆방 환자를 보러 갔다."
그의 글은 이어진다.
"꽉 짜인 예약환자들 때문인지 그 의사는 아버지의 가슴 한번 만져 보지 않았다.
그 다음 날 너무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동네 한방 의료원을 찾았다.
초음파 검사를 하고 난 의사는 나를 불러 간암 말기라고 말했다.
아버님은 보름 후 저 세상으로 떠나셨다."
한국사회는 급속히 고령화되고 있다.
'고령화 소요연수'(65세 이상 인구비율이 7%에서 14%로 느는 데 소요되는 시간)는 한국이 18년으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르다.
프랑스의 경우 115년이 걸렸고 미국과 독일이 각각 75년과 45년이 걸렸다.
노령화에 따른 의료부문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료산업 경쟁력은 미국 대비 26%,독일대비 33%,일본대비 38% 수준에 불과하다.
국민의료비를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해 살펴봐도 미국(14.6%),독일(10.9%),프랑스(9.7%)에 비해 크게 밑도는 5.3%에 불과하다.
대안은 없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의료시장 개방에 그 기대를 건다.
시민단체들은 의료비 상승과 의료 양극화를 이유로 시장개방에 반대한다.
물론 의료의 공공성 및 국가별 제도의 상이함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의료부문의 개방논의가 다른 부문에 비해 부진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135개 WTO 회원국 중 2003년 6월까지 (의료부문) 개방양허안을 제출한 회원국은 25개국에 불과하며 외국인 직접투자를 허용하는 국가는 40개국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미 인천경제특구에 2008년 600병상 규모의 '뉴욕장로회(Presbyterian)병원'의 개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특구지역에 등장할 이 외국계 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의 수가적용을 받지 않으며 다양한 영리행위 및 이익배당지급 및 송금이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특혜시비가 이어질 건 뻔하다.
때맞춰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 협상의 본격 시동은 결국 의료시장뿐 아니라 모든 서비스시장을 개방대세에 내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는 외국변호사를 '변호사'로 부르기를 거부하며 그저 '(해당국)법'을 자문하는 자문사(consultant) 정도로 취급하려는 텃세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이다.
"한국인들은 그들 유전자 속에 개방화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한 외국기자의 촌평을 되새겨 볼 때다.
bjyang@leeinternational.com
< 교육 개방과 함께 '뜨거운 감자' >
교육시장과 더불어 의료서비스 시장 개방 역시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시장 개방론과 불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선 개방론자들은 우리나라 의료산업 경쟁력이 선진국에 비해 크게 취약한 만큼 시장 개방으로 경쟁을 촉진시켜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 나아가 국가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자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각국의 최근 3년간 1인당 의료기관 시설 투자비를 비교하면 미국이 218달러,일본이 252달러,독일이 213달러인 반면 우리나라는 94달러에 그쳤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도 5.6점으로 독일 7.8점, 프랑스 7.1점, 미국 6.8점 등에 비해 크게 낮았다.
양봉진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의료시장 개방을 지지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양 위원은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의 낮은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를 들며 글을 시작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례를 현장감있게 묘사하는 방법은-그 예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전제 하에-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아주 효과적이다.
반면 의료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의료시장 개방이 의료 서비스 질을 양극화시키고 중소병원을 도태시켜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우려한다.
병원들이 이윤이 많이 남는 고급 서비스를 육성하는데만 치중하고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 체계도 뒤흔들려 의료서비스 이용에도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거대한 사회혼란이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물론 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일각의 공포감은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자유무역’이 강자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 방편으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
자유 무역은 분명 ‘사회 전체의 부’를 증진시키고 풍요를 촉진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찰적 갈등도 없지 않고 또 손해보는 계층이 생기는 것도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자유무역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차피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시작됐다면 변화의 대열에서 낙오하는 ‘소수의 피해자’들을 어떻게 배려할 것이냐를 놓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 보다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사회적 혼란과 인간적 고통을 보듬고 전체의 이익을 도모할 ‘묘안’을 함께 생각해 보자.
김혜수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