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던 산업혁명이 전 세계로 확산돼 자본주의적 생산체계가 확립되면서 발전을 거듭하던 세계경제는 1세기 반 만에 커다란 암초에 부딪혔다. 사상유례가 없었던 대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 경제적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회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대공황의 원인을 둘러싸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공황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거시경제적 사건'이었다. 따라서 거시경제학의 학파에 따라 그 원인을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 대공황으로부터의 탈출에 관한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가 된 케인스는 경제의 실물 부문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이에 대해 반대편에 서 있는 통화주의자들은 정부의 통화정책 실패에 대공황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케인지언과 통화론자들 사이에 대공황의 원인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 바로 테민(Temin)논쟁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바 있는 프리드먼이 통화론자의 입장에서 전통적인 케인지언들의 주장을 비판하자,테민이 케인지언의 입장에서 이를 반박함으로써 본격적인 논쟁이 시작돼 테민논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테민논쟁에서 먼저 케인지언들의 해석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케인지언들은 대공황이 '유효수요'의 감소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나라의 경제를 전체적으로 보면 재화 및 용역의 총공급과 총수요가 같아야 균형이 된다.

총공급은 그 나라에서 생산된 것(Y)과 수입된 것(M)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공급된 물건을 가져다 쓰는 것은 △가계에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소비(C) △기업이 생산을 위해 쓰는 투자(I) △정부가 경제활동을 위해 쓰는 정부지출(C) △그리고 외국사람들이 쓰는 수출(X)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식으로 표현해 보면 Y+M=C+I+G+X가 되고,왼쪽의 수입을 오른쪽으로 넘겨서 다시 쓰면 Y=C+I+G+(X-M)이 된다. 마지막 괄호 안의 X-M은 묶어서 순수출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Y는 국내총생산(GDP)으로 생각할 수 있으므로 GDP의 변화는 소비나 투자,정부지출,순수출과 같은 수요측면의 변동에 의해 야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인지언들은 바로 이러한 입장에서 대공황시기에 큰 폭으로 Y가 추락한 것은 바로 수요의 감소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요측면의 각 항목은 왜 갑자기 크게 줄어든 것일까. 먼저 소비부터 살펴보자. 소비가 감소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는 '과소소비론'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세계경제는 1920년대,1차대전의 피해를 복구하면서 상당한 붐을 이루었고 특히 이 시기에 기술발전에 힘입어 노동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그러나 실질임금은 노동생산성이 증가한 만큼 늘어나지 못해 결과적으로 생산은 크게 늘었지만 이를 구매할 소득은 증가하지 못한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소비가 생산을 따라가지 못하는 과소소비(underconsumption)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업의 이윤은 증가하면서 근로자들의 소득이 같은 폭으로 따라가지 못하면서 계층 간의 소득 불균형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는 곧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 계층에서 한계소비성향이 낮은 고소득 계층으로 소득재분배가 발생하게 되었던 것을 의미하고,이로 인해 결국 전체 소비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소비감소 요인으로는 농산물 가격의 하락에 따른 농민들의 소득감소가 지적된다. 앞서 대공황의 개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1920년대 말 농산물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밀의 가격만 하더라도 1929년에 비해 1930년에 약 40% 가까이 떨어졌다. 따라서 농민들의 소비여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인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 큰 폭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주식폭락에 의한 자산 손실이 소비감소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대공황 기간 중에 발생한 소비감소 가운데 약 3분의 1 이상이 주식가격의 하락에 따른 자산손실에 기인한다는 연구가 있다.

노택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