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6월14일자 A10면
12,13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 협상이 성과없이 끝났다.
정부는 7월 독도 주변의 해류 조사 계획을 철회하라는 일본의 요구에 "우리의 정당한 권리"라며 강행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일본도 독도를 EEZ의 경계로 삼자는 우리측 요구를 묵살했다. 양국은 6차 EEZ 협상을 오는 9월 서울에서 속개하기로 했다.
정지영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cool@hankyung.com
'한·일 양국 간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선은 어디를 기준으로 잡아야 하는가.' 우리나라 동해 주변 EEZ의 경계획정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 간 신경전이 뜨겁다. 우리측은 6년 만에 최근 재개한 EEZ 경계획정 제5차 협상에서 EEZ 경계선으로 독도·오키섬의 중간선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일본측은 EEZ 기점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독도·울릉도의 중간선이 돼야 한다고 맞섰다. 양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날선 공방을 벌임으로써 서로 간 현격한 입장 차이를 확인한 채 오는 9월 제6차 협상을 서울에서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사실 양국 간 EEZ 협상은 1996년 유엔 해양법조약 비준 후 모두 4차례에 걸쳐 열렸지만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을 둘러싼 견해 차이로 결국 2000년 6월에 중단되는 사태를 맞는 등 우여곡절이 심했다.
우리측은 그동안 '독도가 유엔 해양법협약 제121조 규정의 암석으로서 EEZ를 가질 수 없다'는 국제법 해석을 전제로 울릉도·오키섬의 중간선을 EEZ 경계선으로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일본이 지난 4월 독도 주변 '수로조사'에 나선 것을 독도 영유권을 훼손하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드러낸 '도발'로 간주한 뒤 이번에 독도·오키섬 중간선으로 기점을 변경,제시했다.
○독도 기점 관철은 국제법상 섬 여부가 관건
'독도를 EEZ 기점으로 해야 한다'는 우리측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우선 과거의 주장과는 모순이 없는지,국제법상으로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도 기점'을 지지하는 쪽은 우리 정부가 그동안의 협상 과정에서 이를 완전히 배제한 것이 아님을 일본측에 분명히 알려왔기 때문에 이번 주장은 기존 입장을 발전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독도에는 비록 계절적이긴 하지만 민간인과 경비대가 주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수역에서 어업활동 등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제는 단순한 암석이 아니라 국제법상의 섬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독도 분쟁은 우리의 영토 주권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일본의 교묘한 술수에 끌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이번 기회에 아예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리는 등 독도 영유권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국익.국제법 규정 등 감안 신중히 추진해야
하지만 독도 기점 EEZ 획정에 대한 신중론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가 독도 기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국제재판소의 판결없이 일본이 독도를 포기하는 경우를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그대로 놔두고서 해양 경계 획정을 추진하는 방안도 있기는 하지만 1998년의 한·일어업협정에서도 확인됐듯이 국민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실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도 기점 획정시 국익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독도를 기점으로 할 경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중국과 일본도 자국 섬을 기점으로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서해에는 '해초(海礁)'와 '동남초(東南礁)'라는 중국 섬이 있으며 남해에는 '도리시마(鳥島)'와 '단조군도(男女群島)'라는 일본 섬이 있으며 이들 섬을 기점으로 할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오히려 잃는 것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국제법 원칙 준수가 독도문제 해결의 올바른 길
독도 영유권은 역사적 연원에 기초한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해 바깥 수역의 경제적 이용권을 결정하는 EEZ의 경계는 마주 보는 국가 사이의 합의를 토대로 획정되는 게 국제적인 관례다. 따라서 양국 간 합의가 없으면 '독도는 우리 땅'과 같은 구호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더욱이 독도는 거주민이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유엔 해양법협약이 배타적 수역을 인정하지 않는 돌섬에 가깝고,이를 굳이 기점으로 내세우면 일본과 중국이 다른 해역에서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에 맞서기 어렵다는 국제법 전문가들의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애국적 정서나 정치적 이해보다는 '바다는 법이 지배한다'는 논리를 좇아 국제법 원칙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국익을 추구하는 올바른 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유권 문제'와 'EEZ 경계획정 문제'라는 두 가지 과제를 조화롭게 풀어낼 수 있는 해법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 용어풀이
◆EEZ=Exclusive Economic Zone에서 따온 것으로 배타적 경제수역이라 부른다.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유엔 국제해양법상의 수역. 1982년 5월 국제연합해양법회의에서 채택한 해양법 협약에 의해 최초로 제정됐다.
◆어업협정=동해와 서해,동중국해에 200해리를 적용할 경우 인접국의 영해는 물론 육지까지 포함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일본이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맺은 어업자원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협정. 신한·일어업협정과 한·중어업협정은 2001년 1월과 6월에 각각 발효됐다.
◆중간수역=양국의 영토 기점에서 측정해 중간에 겹치는 부분을 말한다.
EEZ가 겹치는 경우 중첩 해역에 대해서는 양측 기선(EEZ 기준이 되는 연안을 연결한 선)의 최단거리점 사이의 중간점을 연결하는 선을 기준으로 하게 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울릉도를 동해 기점으로 결정했다.
12,13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배타적 경제수역(EEZ) 획정 협상이 성과없이 끝났다.
정부는 7월 독도 주변의 해류 조사 계획을 철회하라는 일본의 요구에 "우리의 정당한 권리"라며 강행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일본도 독도를 EEZ의 경계로 삼자는 우리측 요구를 묵살했다. 양국은 6차 EEZ 협상을 오는 9월 서울에서 속개하기로 했다.
정지영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cool@hankyung.com
'한·일 양국 간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선은 어디를 기준으로 잡아야 하는가.' 우리나라 동해 주변 EEZ의 경계획정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 간 신경전이 뜨겁다. 우리측은 6년 만에 최근 재개한 EEZ 경계획정 제5차 협상에서 EEZ 경계선으로 독도·오키섬의 중간선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일본측은 EEZ 기점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독도·울릉도의 중간선이 돼야 한다고 맞섰다. 양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날선 공방을 벌임으로써 서로 간 현격한 입장 차이를 확인한 채 오는 9월 제6차 협상을 서울에서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사실 양국 간 EEZ 협상은 1996년 유엔 해양법조약 비준 후 모두 4차례에 걸쳐 열렸지만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을 둘러싼 견해 차이로 결국 2000년 6월에 중단되는 사태를 맞는 등 우여곡절이 심했다.
우리측은 그동안 '독도가 유엔 해양법협약 제121조 규정의 암석으로서 EEZ를 가질 수 없다'는 국제법 해석을 전제로 울릉도·오키섬의 중간선을 EEZ 경계선으로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일본이 지난 4월 독도 주변 '수로조사'에 나선 것을 독도 영유권을 훼손하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드러낸 '도발'로 간주한 뒤 이번에 독도·오키섬 중간선으로 기점을 변경,제시했다.
○독도 기점 관철은 국제법상 섬 여부가 관건
'독도를 EEZ 기점으로 해야 한다'는 우리측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우선 과거의 주장과는 모순이 없는지,국제법상으로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도 기점'을 지지하는 쪽은 우리 정부가 그동안의 협상 과정에서 이를 완전히 배제한 것이 아님을 일본측에 분명히 알려왔기 때문에 이번 주장은 기존 입장을 발전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독도에는 비록 계절적이긴 하지만 민간인과 경비대가 주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수역에서 어업활동 등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제는 단순한 암석이 아니라 국제법상의 섬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독도 분쟁은 우리의 영토 주권과 관련된 사안인 만큼 일본의 교묘한 술수에 끌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이번 기회에 아예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리는 등 독도 영유권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국익.국제법 규정 등 감안 신중히 추진해야
하지만 독도 기점 EEZ 획정에 대한 신중론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가 독도 기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하는데 이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국제재판소의 판결없이 일본이 독도를 포기하는 경우를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그대로 놔두고서 해양 경계 획정을 추진하는 방안도 있기는 하지만 1998년의 한·일어업협정에서도 확인됐듯이 국민의 반발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실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도 기점 획정시 국익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독도를 기점으로 할 경우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중국과 일본도 자국 섬을 기점으로 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 서해에는 '해초(海礁)'와 '동남초(東南礁)'라는 중국 섬이 있으며 남해에는 '도리시마(鳥島)'와 '단조군도(男女群島)'라는 일본 섬이 있으며 이들 섬을 기점으로 할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오히려 잃는 것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국제법 원칙 준수가 독도문제 해결의 올바른 길
독도 영유권은 역사적 연원에 기초한 우리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영해 바깥 수역의 경제적 이용권을 결정하는 EEZ의 경계는 마주 보는 국가 사이의 합의를 토대로 획정되는 게 국제적인 관례다. 따라서 양국 간 합의가 없으면 '독도는 우리 땅'과 같은 구호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더욱이 독도는 거주민이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 유엔 해양법협약이 배타적 수역을 인정하지 않는 돌섬에 가깝고,이를 굳이 기점으로 내세우면 일본과 중국이 다른 해역에서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에 맞서기 어렵다는 국제법 전문가들의 지적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애국적 정서나 정치적 이해보다는 '바다는 법이 지배한다'는 논리를 좇아 국제법 원칙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국익을 추구하는 올바른 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유권 문제'와 'EEZ 경계획정 문제'라는 두 가지 과제를 조화롭게 풀어낼 수 있는 해법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 용어풀이
◆EEZ=Exclusive Economic Zone에서 따온 것으로 배타적 경제수역이라 부른다.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모든 자원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유엔 국제해양법상의 수역. 1982년 5월 국제연합해양법회의에서 채택한 해양법 협약에 의해 최초로 제정됐다.
◆어업협정=동해와 서해,동중국해에 200해리를 적용할 경우 인접국의 영해는 물론 육지까지 포함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일본이 유엔 해양법 협약에 따라 맺은 어업자원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협정. 신한·일어업협정과 한·중어업협정은 2001년 1월과 6월에 각각 발효됐다.
◆중간수역=양국의 영토 기점에서 측정해 중간에 겹치는 부분을 말한다.
EEZ가 겹치는 경우 중첩 해역에 대해서는 양측 기선(EEZ 기준이 되는 연안을 연결한 선)의 최단거리점 사이의 중간점을 연결하는 선을 기준으로 하게 돼 있는데 우리나라는 울릉도를 동해 기점으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