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자선 업무의 우선 순위를 바꾸기로 했다.

나는 부를 사회에 되돌려줄 책임이 있고 또 최선의 방식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믿는다."

500억달러(약 48조원)의 재산을 가진 세계 최고의 부자.하버드대에 다니던 1975년 친구와 함께 세운 한 이름 없는 회사를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로 키워낸 기업인.1994년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지금까지 105억달러를 기부한 세계적 자선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50)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들이다.

그가 지난 15일 다시 한번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앞으로 2년 동안 회사 업무에서 단계적으로 손을 떼고 2008년 7월부터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업무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힌 것.사실상 은퇴 선언이다.

게이츠 회장은 앞서 수차례에 걸쳐 그의 재산 중 가족 몫으로 1000만달러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절정의 시기에 '아름다운 퇴장'을 결심한 게이츠 회장의 행보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걸까.

또 그가 떠난 MS는 어떻게 바뀔까.

교육과 보건의료에 헌신

게이츠 회장은 '은퇴 선언' 직후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은퇴 후에는 교육과 보건의료 문제에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교육은 신비로운 일"이라며 "미국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교육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교육 관련 이슈들을 많이 공부하고 교실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덧붙였다.

게이츠 회장은 또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 지구의 40억 빈곤층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빈곤층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보건의료 지원에 역점을 두겠다는 뜻이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그동안 미국에서만 1500개의 학교를 설립했고 전 세계적으로 빈곤층의 3대 질병인 에이즈 말라리아 B형간염 퇴치에 앞장서 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게이츠 회장이 재단에 막대한 재산을 기부하면서 자선사업가로서 과거 록펠러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게이츠 회장은 일부에서 제기되는 정치인으로의 변신 가능성에 대해서는 "시간이 많아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공직에 참여한 적이 없듯이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공직은 자신이 인생을 즐기는 방식이나 일하는 방식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MS 미래는 불투명

하지만 MS를 떠나는 게이츠 회장의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듯 하다.

지금의 MS는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구글이나 야후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는 데다 차기 윈도 운영시스템인 비스타의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

주가도 힘을 못쓰고 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성장은 정체되고 인터넷 부문 사업은 실패를 거듭하고 있으며 비스타 개발은 지체되고 있다"며 "MS는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 있다"고 혹평했다.

신문은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MS의 조직이 '명령과 통제형'이어서 소프트웨어가 톱-다운식으로 개발되던 구시대의 문화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초고속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도 완전히 바뀌었는데 MS는 이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

윈도 비스타 출시가 늦어지는 것도 윈도를 운영체제로 쓰고 있는 각종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호환성을 보장하려다 보니 개발 비용과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난 결과라고 신문은 분석했다.

반면 구글 등 신생 업체들은 처음에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제품을 내놓더라도 쉽게 업데이트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MS의 '새 얼굴' 레이 오지

MS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미 '공룡'처럼 비대해진 MS가 쉽게 변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게이츠 회장이 은퇴 선언을 하면서 자신이 맡고 있던 '최고 소프트웨어 설계책임자(Chief Software Architect)' 자리를 넘겨준 레이 오지 최고기술책임자(50)에게 주목하고 있다.

오지는 1990년대 그룹웨어로 유명했던 '로터스 노츠'를 개발한 천재 프로그래머로 게이츠 회장이 '세계 3대 개발자 중 한 명'이라고 극찬한 인물.MS는 오지가 설립한 그로브네트웍스를 2005년 인수함으로써 그를 '모셔 오는 데' 성공했다.

MS는 앞으로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50)와 레이 오지,그리고 '연구 및 전략담당 최고 책임자'로 지명된 크레이그 먼디(56) 등 '3두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업체로서의 MS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는 오지에게 달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