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 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6월13일자 A39면
지난주 S경찰서의 계장이란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4년 전 월드컵과 관련된 필자의 칼럼을 읽었다며 "월드컵 열기를 국민통합과 에너지결집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 아닌가.
이에 대한 정책고견을 알려 달라"는 것이다.
도대체 치안에 힘써야 할 경찰서 계장이 왜 국민통합과 월드컵 정책을 걱정하는가.
요사이 공영방송매체들의 행태를 보면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우리 월드컵 팀이 가나에 3 대 1로 패한 날 아침 KBS 라디오에서는 6시3분께부터 시작된 월드컵뉴스가 6시25분 뉴스를 마칠 때까지 계속됐다.
지난 주말에는 외국 팀들끼리 하는 경기를 공중파 TV 3사가 동시에 정규방송을 끊고 중계했다.
요즘 뉴스시간은 월드컵 해설로,TV프로는 붉은 색깔과 구호,고함으로 거의 도배되다시피 한다.
필자는 공중파 방송의 뉴스청취를 오래 전에 끊었지만,이제는 이따금 시청하던 다른 프로도 끊어야 할 것 같다.
방송사들은 싫으면 보지 말라 하겠지만 지상파를 이용하는 방송은 공기(空氣)와 같이 국민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公共財)다.
따라서 공중파매체는 국민의 삶의 다양한 측면을 고루 비추고 알려줄 책임이 있다.
공기(公器)를 맡은 자들이 독선으로 자행하는 매체 남용은 그만큼 직무유기며 국민의 기회를 뺏는 것이다.
대중매체는 사람의 뇌리를 점령해 그들의 생각을 조율한다.
그러하기에 기업들은 귀중한 몇 초의 광고시간을 사기 위해 거대한 광고비를 지불한다.
지금 공영방송이 몇 주에 걸쳐 퍼부어대는 월드컵방송 폭탄은 그 비용을 계산한다면,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국민의 자원이 될 것인가.
금전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을 충동시키는 효과다.
지금 우리처럼 월드컵에 열광하는 나라가 세계 언제 어디에 있었던가.
얼마 전 한국갤럽의 표본조사는 우리국민의 6.8%만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할 것으로,5.8%는 우승을 예상하는 것으로 밝혔다.
가나 패전 이후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으나 방송이 사람들에게 어떤 환상과 맹신(盲信)을 유발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FIFA랭킹 29등이라는 나라가 온통 월드컵에 미쳐서 시청광장을 새빨갛게 메우고,외국 어디에나 붉은악마가 구름처럼 몰려가 꽹가리를 두드리고 '대~한민국'을 절규한다.
이런 응원모습을 세계는 경이적으로 본다지만 과연 그들은 어떤 눈으로 지켜볼 것인가? 이것은 천성산 도롱뇽을 살린다고 국가지도자들이 부화뇌동하고 수조원을 낭비하는 나라에서나 볼 법한 편집적 광증이다.
국민에게 재미를 주고 에너지 결집을 과시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정상(正常)을 넘치면 '미친 것'이다.
약간 미친 건 긍정적 에너지를 유발하지만 지나친 편집증은 어떤 사회적 발작(發作)을 초래할지 알 수 없다.
아이가 지나치려하면 어른이 보살펴서 막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방송이 앞에서 북치고 정권은 뒤에서 지켜보며 광란의 불길에 기름을 부어넣는 꼴이다.
그리해서 공영방송이,경찰이 국민통합과 월드컵정책을 자임(自任)하려는 나라가 됐다.
집단적 광기는 역사적으로 히틀러의 나치,마오쩌둥의 문화혁명 같은 전체주의(全體主義)를 낳는 씨앗이 되어왔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나,우리도 4년 전 월드컵 4강을 이룬 뒤 여중생사망 반미촛불시위를 시작으로 이념몰이와 무법의 집단행동을 다반사로 보게 됐다.
우리 사회가 이런 유치한 모습을 또 되풀이할 것인가.
월드컵대전을 앞둔 지금 이런 비판은 찬물을 끼얹는 듯해서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자제함이 이성 있는 정부와 방송이 할 일이다.
국무총리실은 독일월드컵을 계기로 국가이미지 제고를 계획한다고 한다.
필자는 월드컵 우승보다 어른스럽고 합리적인 국민의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국위선양에 훨씬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쏠림 현상을 보는 두가지 시각 >
월드컵 개막 이후 응원도 그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우리 대표팀의 1승과 함께 '월드컵 무드'는 벌써 최고조로 치닫는 분위기다.
신문과 방송도 연일 월드컵 관련 뉴스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다.
월드컵 신드롬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다독이고 사회 통합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한 편이다.
하지만 사회 한쪽에는 '월드컵 일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월드컵 응원 양상이 파시즘적 광기라거나 획일화된 전체주의와 다름없다는 게 비판론자들이 말하는 주 내용이다.
칼럼 필자인 김영봉 교수 역시 과도한 월드컵 신드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김 교수는 미디어,특히 방송의 과도한 월드컵 보도를 비판하고 있다.
그 논거의 흐름을 살펴보자.
1.지상파는 국민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다.
2.지상파를 사용하는 공중파 매체는 국민들의 보다 다양한 삶의 측면을 알려줄 책임이 있다.
3.과도한 월드컵 치중은 매체 남용이며 '사회적 공기(空氣)'로서의 직무유기이자 국민의 선택권을 빼앗는 것이다.
4.방송과 정부는 본연의 임무를 돌아봐야 한다.
축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에는 축구팬과 비(非)팬이라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월드컵을 향한 사회적 쏠림 현상은 '비 팬'들을 '비정상'으로 몰고 왕따시키는 것과 다름아니다.
정작 월드컵 개최국인 독일에서는 40여개 채널 중 1개 채널만이 월드컵 경기를 전담 중계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축구팬들의 열광을 꼭 부정적으로만 봐야 할까? 월드컵은 사회의 잠재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적인 마당이며,한국 특유의 긍정적 '놀자판' 문화의 일단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준만 교수는 저서 '축구는 한국이다'에서 "좁은 국토,높은 인구밀도,인구의 사회문화적 동질성,과잉 도시화,초강력 중앙 구조 등 한국만의 유별난 조건에서 쏠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이처럼 월드컵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과 생각은 제각각이게 마련이다.
월드컵 긍정론도 비판론도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분명한 것은 월드컵이 우리 사회 경제 문화 가치관 등에 전방위적 영향을 미치는 빅 이벤트라는 사실이다.
긍정론을 지지하건,부정론 입장에 서건,월드컵을 둘러싼 상반된 시각을 균형있게 살펴보고,자신만의 '관점'을 꼭 정리해 보자.
김혜수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6월13일자 A39면
지난주 S경찰서의 계장이란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4년 전 월드컵과 관련된 필자의 칼럼을 읽었다며 "월드컵 열기를 국민통합과 에너지결집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 아닌가.
이에 대한 정책고견을 알려 달라"는 것이다.
도대체 치안에 힘써야 할 경찰서 계장이 왜 국민통합과 월드컵 정책을 걱정하는가.
요사이 공영방송매체들의 행태를 보면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우리 월드컵 팀이 가나에 3 대 1로 패한 날 아침 KBS 라디오에서는 6시3분께부터 시작된 월드컵뉴스가 6시25분 뉴스를 마칠 때까지 계속됐다.
지난 주말에는 외국 팀들끼리 하는 경기를 공중파 TV 3사가 동시에 정규방송을 끊고 중계했다.
요즘 뉴스시간은 월드컵 해설로,TV프로는 붉은 색깔과 구호,고함으로 거의 도배되다시피 한다.
필자는 공중파 방송의 뉴스청취를 오래 전에 끊었지만,이제는 이따금 시청하던 다른 프로도 끊어야 할 것 같다.
방송사들은 싫으면 보지 말라 하겠지만 지상파를 이용하는 방송은 공기(空氣)와 같이 국민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公共財)다.
따라서 공중파매체는 국민의 삶의 다양한 측면을 고루 비추고 알려줄 책임이 있다.
공기(公器)를 맡은 자들이 독선으로 자행하는 매체 남용은 그만큼 직무유기며 국민의 기회를 뺏는 것이다.
대중매체는 사람의 뇌리를 점령해 그들의 생각을 조율한다.
그러하기에 기업들은 귀중한 몇 초의 광고시간을 사기 위해 거대한 광고비를 지불한다.
지금 공영방송이 몇 주에 걸쳐 퍼부어대는 월드컵방송 폭탄은 그 비용을 계산한다면,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국민의 자원이 될 것인가.
금전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을 충동시키는 효과다.
지금 우리처럼 월드컵에 열광하는 나라가 세계 언제 어디에 있었던가.
얼마 전 한국갤럽의 표본조사는 우리국민의 6.8%만이 16강에 진출하지 못할 것으로,5.8%는 우승을 예상하는 것으로 밝혔다.
가나 패전 이후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으나 방송이 사람들에게 어떤 환상과 맹신(盲信)을 유발시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FIFA랭킹 29등이라는 나라가 온통 월드컵에 미쳐서 시청광장을 새빨갛게 메우고,외국 어디에나 붉은악마가 구름처럼 몰려가 꽹가리를 두드리고 '대~한민국'을 절규한다.
이런 응원모습을 세계는 경이적으로 본다지만 과연 그들은 어떤 눈으로 지켜볼 것인가? 이것은 천성산 도롱뇽을 살린다고 국가지도자들이 부화뇌동하고 수조원을 낭비하는 나라에서나 볼 법한 편집적 광증이다.
국민에게 재미를 주고 에너지 결집을 과시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정상(正常)을 넘치면 '미친 것'이다.
약간 미친 건 긍정적 에너지를 유발하지만 지나친 편집증은 어떤 사회적 발작(發作)을 초래할지 알 수 없다.
아이가 지나치려하면 어른이 보살펴서 막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방송이 앞에서 북치고 정권은 뒤에서 지켜보며 광란의 불길에 기름을 부어넣는 꼴이다.
그리해서 공영방송이,경찰이 국민통합과 월드컵정책을 자임(自任)하려는 나라가 됐다.
집단적 광기는 역사적으로 히틀러의 나치,마오쩌둥의 문화혁명 같은 전체주의(全體主義)를 낳는 씨앗이 되어왔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나,우리도 4년 전 월드컵 4강을 이룬 뒤 여중생사망 반미촛불시위를 시작으로 이념몰이와 무법의 집단행동을 다반사로 보게 됐다.
우리 사회가 이런 유치한 모습을 또 되풀이할 것인가.
월드컵대전을 앞둔 지금 이런 비판은 찬물을 끼얹는 듯해서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제부터라도 자제함이 이성 있는 정부와 방송이 할 일이다.
국무총리실은 독일월드컵을 계기로 국가이미지 제고를 계획한다고 한다.
필자는 월드컵 우승보다 어른스럽고 합리적인 국민의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국위선양에 훨씬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쏠림 현상을 보는 두가지 시각 >
월드컵 개막 이후 응원도 그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우리 대표팀의 1승과 함께 '월드컵 무드'는 벌써 최고조로 치닫는 분위기다.
신문과 방송도 연일 월드컵 관련 뉴스로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다.
월드컵 신드롬에 대해서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다독이고 사회 통합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한 편이다.
하지만 사회 한쪽에는 '월드컵 일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월드컵 응원 양상이 파시즘적 광기라거나 획일화된 전체주의와 다름없다는 게 비판론자들이 말하는 주 내용이다.
칼럼 필자인 김영봉 교수 역시 과도한 월드컵 신드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김 교수는 미디어,특히 방송의 과도한 월드컵 보도를 비판하고 있다.
그 논거의 흐름을 살펴보자.
1.지상파는 국민 모두가 향유하는 공공재다.
2.지상파를 사용하는 공중파 매체는 국민들의 보다 다양한 삶의 측면을 알려줄 책임이 있다.
3.과도한 월드컵 치중은 매체 남용이며 '사회적 공기(空氣)'로서의 직무유기이자 국민의 선택권을 빼앗는 것이다.
4.방송과 정부는 본연의 임무를 돌아봐야 한다.
축구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에는 축구팬과 비(非)팬이라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월드컵을 향한 사회적 쏠림 현상은 '비 팬'들을 '비정상'으로 몰고 왕따시키는 것과 다름아니다.
정작 월드컵 개최국인 독일에서는 40여개 채널 중 1개 채널만이 월드컵 경기를 전담 중계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축구팬들의 열광을 꼭 부정적으로만 봐야 할까? 월드컵은 사회의 잠재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적인 마당이며,한국 특유의 긍정적 '놀자판' 문화의 일단이라는 시각도 있다.
강준만 교수는 저서 '축구는 한국이다'에서 "좁은 국토,높은 인구밀도,인구의 사회문화적 동질성,과잉 도시화,초강력 중앙 구조 등 한국만의 유별난 조건에서 쏠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이처럼 월드컵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과 생각은 제각각이게 마련이다.
월드컵 긍정론도 비판론도 나름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분명한 것은 월드컵이 우리 사회 경제 문화 가치관 등에 전방위적 영향을 미치는 빅 이벤트라는 사실이다.
긍정론을 지지하건,부정론 입장에 서건,월드컵을 둘러싼 상반된 시각을 균형있게 살펴보고,자신만의 '관점'을 꼭 정리해 보자.
김혜수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