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에서 우리는 닭의 모래주머니 구운 것을 즐겨 먹었지요, '똥집,똥집' 하기는 싫고 '모래주머니'라고 하기엔 너무 길고 해서 주인과 '꼬꼬집'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했습니다만 그건 우리 마음에 지나지 않았지요. 주인은 주방 쪽으로 돌아서면서 이랬지요. '똥집 한 사라.'>

작가 이윤기씨는 10여년 전 발표한 한 글에서 우리말 명사가 사라져 간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사회에서는 분화된 언어가 필요한데 국어에서는 새로운 우리말의 창출은커녕 있는 말조차 외래어의 홍수 속에 사라져 간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를 '명사의 사막화'라고 비유했다.

명사가 사라져 간다는 것은 개념어가 부족해진다는 뜻이다.

대개는 그 자리를 외래어(영어가 태반이지만)가 메우게 되므로 외래어의 위세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만하다.

우리말 명사의 70%가 한자어이지만 한자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자어는 뿌리가 허약해 자칫 오용되기 십상이다.

정교한 의미의 분화는커녕 본래 가지고 있는 의미마저도 무뎌지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 한자어가 갖는 의미를 왜곡해 우리말을 위축시키는 사례는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난다.

<포도주의 나라 프랑스 남성은 미국의 남성보다 평균 3배 낮은 심근경색 발생률을 보였다. 여성은 무려 12배나 낮게 조사돼 더 극명한 차이를 보여줬다.>

포도주의 효용성을 다룬 이 글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는 '배(倍)'의 쓰임이다.

이는 '늘어남'을 나타내므로 '3배 낮은' '12배나 낮게'란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3분의 1에 불과한''12분의 1로' 정도로 써야 할 곳이다.

<지원자들은 마감시간 직전까지 눈치를 보다가 원서를 접수했다.>

대학 입시 때면 흔히 볼 수 있는 이 표현은 어떨까.

접수(接受)'란 '받는 것'이고 그 주체는 당연히 '받는 쪽'이니 의미구성상 반드시 '대학이 원서를 접수했다'꼴로 써야 한다는 게 드러난다.

'수험생이 원서를 접수했다'란 말은 성립하지 않으며 이는 상황에 따라 '(무엇을) 제출하다,신고하다,내다' 등으로 써야 할 곳이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종종 <주민들께서는 쓰레기를 반드시 분리수거해 주십시오>라고 하는데,이때도 마찬가지다.

'수거(收去)'는 쓰레기 처리 대행업체가 하는 것이고 주민들은 쓰레기를 '분리배출'한다.

<부산지역은 공장용지 부족난을 해소하기 위해…> <최근 심화되는 실업난에 대처해…>

'부족난'이나 '실업난'이란 말도 정체불명의 비논리적인 말이다.

'-난(難)'은 명사 아래 붙어 어려운 형편이나 처지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이다.

식량난,전력난,구인난 등처럼 무언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나타낸다.

'부족+난''실업+난'같은 구성은 성립하지 않는 말이고 '공급난''취업난'이라 하는 게 바른 표현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