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유지되어 왔던 고전적 금본위제는 국제결제시스템의 효율성을 제고함으로써 세계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금본위제의 기본 구조는 금의 수출입에 통제를 가하지 않음으로써 국제 금가격이 단일 가격으로 형성된 가운데 각국이 자국통화의 가치를 금의 가치에 고정하는 것이다.

금본위제의 효율성은 금이 '뉴머레어(numeraire)'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뉴머레어'란 가치를 갖는 재화를 교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화폐가 없던 시절,쌀이라든가 옷감 등을 다른 재화의 거래에 있어 기준으로 삼는다면 쌀 혹은 옷감이 뉴머레어가 되는 것이다.

뉴머레어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의 효율성은 간단한 수학으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쌀·호미·옷감·신발·쇠고기 등 5가지 재화가 있는 경제를 생각해 보자.화폐가 없는 경우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려면 각 재화 간에 교환비율이 정해져야 한다.

즉 '쌀 1말에 호미 두 개''신발 한 켤레에 옷감 한 필' 등의 교환이 이뤄지기 위해 모든 재화 사이에 각각의 교환비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수학적으로 보면 5개의 재화를 5각형 형태로 늘어놓고,모든 재화를 연결하는 선을 그어 해당되는 각각의 선마다 교환비율이 정해져야 하는 것이다.

5각형의 꼭지점을 연결하는 모든 선의 개수는 n(n-1)/2의 공식에 따라 총 10개가 된다.

다시 말해 화폐가 없는 상황에서 5개의 재화가 거래되기 위해서는 총 10개의 교환비율이 정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재화 가운데 쌀을 거래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자.그러면 모든 재화에 대해 쌀과의 교환비율만 정해두면 거래가 가능해진다.

쌀 한 말에 호미 두 개,쌀 한 말 반에 신발 한 켤레와 같은 식으로 교환비율이 정해지면 호미와 신발 사이에는 3 대 1의 교환비율이 자동적으로 성립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총 4개의 교환비율만 정하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큰 절약인가!

한 경제 내에 거래되는 재화와 용역이 100개인 경우만 생각하더라도 뉴머레어가 없으면 4950개의 교환비율이 있어야 하지만 뉴머레어가 있으면 99개의 교환비율이면 된다.

그런데 경제 내에 100가지의 재화와 용역만 있는가.

따라서 뉴머레어가 존재하는 경우의 효율성은 실로 엄청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금본위제의 장점은 바로 이러한 효율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각국이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는 경우 통화 간의 교환비율이 정해져야 하는데,각국이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통화가치를 정한다면 모든 나라는 다른 모든 나라와 각각 환율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금이라는 공통의 재화에 대해 통화가치를 정한다면 환율의 가짓수는 크게 줄어들게 되고 국제무역 거래에 있어서 효율성이 대폭 향상될 수 있는 것이다.(물론 금의 수출입에 통제를 가하지 않음으로써 각국에서의 금 가격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전제조건이며,이를 금본위제가 운영된 기본원칙:rules of the game 가운데 첫 번째로 꼽는다)

1차대전이 끝나고 각국이 전쟁 이전의 형태로 금본위제를 부활시키려고 노력한 것이나,2차대전 이후 브레튼 우즈체제가 출범한 것은 국제거래에 있어서의 효율성을 제고함으로써 세계경제 발전을 꾀하려 했던 것이다.(브레튼 우즈 체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다)

1920년대 세계경제는 1차대전의 폐허로부터 전후복구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한 정도의 붐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금본위제의 부활은 상당한 진통을 겪는데,여기에는 전후 국제경제 환경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즉 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의 상대적 지위가 약해진 반면 전쟁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던 미국의 경제적 지위는 강화되었던 것이다.

이는 1차대전 이전에 영국의 주도 아래 유지돼 왔던 고전적 금본위제를 부활시키는 것이 근본적으로 어려워진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경제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금본위제의 부활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국제경제 체제의 효율성이 저하된 것이 1920년대 말 미증유의 세계대공황을 초래한 기저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