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6월5일자 A39면


이번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지난번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몹시 낮게 나타났다.

무슨 이유일까? 투표 전에 이미 대세는 한나라당 쪽으로 기울어졌다고 했다.

만일 한 사람이 한나라당 지지자라면 그는 투표를 위해 시간을 낭비하느니 그 시간을 다른 목적으로 쓰려 했을 것이다.

자기의 한 표 없이도 한나라당이 이기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테니까.

열린우리당 지지자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애써 투표장에 나가 열린우리당 후보를 찍어 준다 해도 자기 한 사람의 힘으로는 중과부족이다.

어차피 안 될 것이면 자기 시간을 다른 데 유용하게 쓰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한나라당 지지자도 아니고 열린우리당 지지자도 아닌 사람은 더더욱 투표장에 나갈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누가 내 지방을 위해 보다 잘 봉사할 수 있는지 판단이 선다면 쉽게 마음을 결정하고 투표장에 나갔으련만 한꺼번에 여러 사람을 검토하고 판단하자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이번 선거에는 기초단체 의원들에 대해서도 정당 공천이 이루어져 후보자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을 주었으나 여전히 누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또 어렵사리 연구를 해서 판단한다고 치더라도 내 한 표가 결정적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투표를 하려는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지난번 지방선거 때의 투표율보다 높아졌는데 그것은 아마도 정당공천을 시행한 때문일 것이다.

기초단체 선거에서의 정당공천은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여론도 있다.

그들의 주장은 기초단체의 장이나 의원들은 지역에 대해 잘 알고 살림을 잘 할 수 있는 지식이나 경험만 있으면 될 일이지 정당과 연결시켜 정치판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한번 뒤집어 생각해 보자.정당 공천이 없다면 정치판이 형성되지 않을 것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당연계가 없을 경우 정책의 일관성은 더욱 사라지고 아무런 제약 없는 정치적 타협과 흥정이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더욱 문제 되는 것은 정당공천이 없을 경우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을 가려낼 정보가 없다는 점이다.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의 경력과 공약을 담은 유인물이 유권자에게 배달되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봉투를 뜯지도 않은 채 휴지통에 버려버릴 것이다.

열심히 들여다 본들 누가 진정으로 적합한 사람인지 판단하기 어렵고,또 할 수 있다 할지라도 내 한 표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바에야 정당공천을 통해 후보자들의 성향을 밝혀주고 아울러 정당의 정강정책을 통해 당선 뒤 그들의 정책이 일관성을 지닐 수 있게 제한을 가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정당의 경제적 존재 이유는 바로 투표자들에게 정당을 통해 정책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전달함으로써 투표의 참여비용을 낮추어 주고 투표자들의 선호를 반영시키자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에서 중앙 정치의 힘이 너무 과다하게 작용하여 정책대결이 무시되었다는 비판은 옳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정당정치의 원리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의 정당정치는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많다.

한 정당에서 공천을 받아 당선된 후에 당을 옮겨버리는 일은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또한 경선에서 졌다고 다른 당의 공천을 받는다는 것 역시 정당정치의 뜻을 저버리는 일이다.

대선이나 총선을 앞두고 행해지는 정당의 이합집산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정치인들의 파렴치한 행위다.

이번 선거 후에 대대적 정계 개편이 있다는데 또다시 국민을 우롱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공천받은 정당을 떠나는 선출직들의 직위는 자동적으로 박탈되게 하는 법을 속히 만들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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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무임승차' 유권자들 무관심‥정당 공천은 후보 가려내는데 도움 ]

5·31 지방선거의 후폭풍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참패한 여권은 사분오열(四分五裂)하는 양상이고 각종 정부정책은 혼선을 빚을 조짐이다.

여당의 참패 이유나 50% 안팎의 투표율에 대한 갖가지 분석도 쏟아져 나온다.

선거란 민주주의 정치활동의 핵심이다.

하지만 선거,나아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은 커지고 있다.

이유가 뭘까?

민주주의 하에서 투표자들은 대체로 자기 이익에 봉사할 정치가를 선택한다.

저소득층의 경우 고소득층에 세금을 높게 매겨 여기서 얻어진 재원을 빈곤층 지원에 사용하겠다는 정치가를 지지할 것이고,고소득층은 그 같은 견해를 펴는 정치인에 반기를 들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정당에 관계없이 중립적 입장을 택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해 극단적인 입장을 주창하기보다 '중간 지점'의 구미에 맞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다.

결국 후보나 정책에서 별 차이가 없어지고 유권자들은 정치에 무관심해진다.

'무임승차'도 큰 이유다.

영어 속담에는 '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모두의 일은 누구의 일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돈을 내지 않아도 버스를 계속 탈 수 있다면 버스요금을 내지 않는 승객이 늘어나리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른 유권자들이 시간을 들여 후보 정책을 평가해 투표하는 동안 나는 내 이익을 도모하더라도 선거는 이뤄지고,정치가 진행된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 무임승차'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 채택되도록 적극 개입하는 이해집단에 도움을 줄 뿐이다.

이영선 교수의 칼럼은 '정당정치의 효용성'을 지지하는 내용이다.

이번 선거에 기초단체 의원들에 대해서도 정당공천을 받도록 한 데 대해 일각에선 '선거의 정치판화'를 초래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지방선거 투표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으며 △정당공천이 유권자들에게 후보를 가려낼 중요한 정보가 된다는 입장을 편다.

정당공천 자체의 효용이 큰 만큼 각종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정당정치 원리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덧붙이고 있다.

이번주 '생각하기'를 계기로 선거와 정치에 대한 생글 독자 여러분의 생각을 정리해 두자.3면 포커스와 생글기자 코너의 박민호 생글기자 칼럼도 함께 읽어보자.

김혜수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