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회에 언급했듯이 네트워크효과에 의해 복본위제가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면 전 세계적으로 금본위제가 채택된 것 역시 네트워크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금본위제로 진행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보불전쟁의 발발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이 태환을 정지함에 따라 독일은 복본위제를 유지할 명분이 없어졌다.
더구나 독일의 대외무역거래는 상당 부분 영국의 런던에서 스털링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따라서 독일은 1871년 금본위제를 채택하게 되었고,이는 다시 네트워크 외부성을 촉발함으로써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줄줄이 금본위제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이 1879년 금본위제에 합류함으로써 세계 주요국들이 모두 금본위제를 채택하기에 이르렀고,이때부터 1차대전의 발발로 국제통화시스템으로서의 금본위제가 해체된 1914년까지의 기간을 '고전적 금본위제의 시대'(the classical gold standard era)라고 부른다.
이 기간 중 국제수지의 조정과 관련해 금본위제가 작동된 원리는 흄(D.Hume)의 가격-정화-이동 메커니즘(price-specie-flow mechanism)이었다.
이는 금본위제 하에서 국제수지의 불균형은 통화의 흐름과 이에 따른 물가의 변동을 통해 자동으로 균형을 회복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국제수지 적자를 보는 나라가 있다고 하자.외국에 판 물건보다 외국에서 사들인 물건이 더 많기 때문에 이 나라는 통화인 금이 외국으로 흘러나가게 된다.
그러면 이 나라에 있는 금의 양이 줄어드는 것(통화량이 감소하는 것)이므로 물가가 하락하게 된다.
(통화량의 변동이 물가에 영향을 주는 것은 피셔의 교환방정식을 가지고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다)
물가가 하락하면 그 나라의 물건이 외국에서 더 잘 팔리게 되고,상대적으로 더 비싸진 외국의 물건은 그 나라에서 잘 안 팔리게 된다.
즉 수출은 늘고,수입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수지 적자는 국제수지 균형으로 돌아오게 된다.
국제수지 흑자인 나라도 통화량의 증대->물가상승->수출감소·수입증대의 과정을 거치면서 흑자폭이 줄어들고 마침내 수지 균형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격-정화-이동 메커니즘이다.
가격-정화-이동 메커니즘은 논리의 단순 명료함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경제환경이 변하면서 흄의 논리는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환경의 변화 가운데 첫 번째는 국가간 자본의 이동이 늘었다는 점이다.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자유무역주의의 확산은 상품과 생산요소의 국가간 이동을 증대시켰고,따라서 자본 또한 국가간 이동이 크게 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기자본의 이동 역시 금본위제 하에서 국제수지의 균형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기저로 작동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작용한다.
먼저 무역수지의 적자로 인해 국내통화량이 감소하면 단기에 있어서 금리가 상승한다.
금리가 상승하면 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이 발생하게 되고 적자의 일부가 보전됨으로써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국제수지는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이 같은 상황은 일부 국가에서 정부 정책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장되기도 했다.
즉 무역적자로 통화량이 감소할 경우 물가에 하방경직성이 작용한다면(즉 물가 하락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경기침체가 발생한다.
정부는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외국으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여 무역수지에서의 적자를 보전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예가 1차대전 이후 영국의 경우이다.
1차대전이 끝나자 영국은 1925년 금본위제로 복귀하면서 파운드화의 가치를 전쟁 이전 수준으로 정함으로써 파운드화의 가치를 고평가했다.
이는 무역수지의 악화를 초래하고 통화량의 감소를 가져왔으나 가격은 하락하지 않아 결국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을 맞이했던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1929년에 시작된 인류 역사상 초유의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의 일부를 이러한 영국의 경기침체에서 찾기도 한다.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
이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금본위제로 진행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보불전쟁의 발발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이 태환을 정지함에 따라 독일은 복본위제를 유지할 명분이 없어졌다.
더구나 독일의 대외무역거래는 상당 부분 영국의 런던에서 스털링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따라서 독일은 1871년 금본위제를 채택하게 되었고,이는 다시 네트워크 외부성을 촉발함으로써 덴마크 네덜란드 등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줄줄이 금본위제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이 1879년 금본위제에 합류함으로써 세계 주요국들이 모두 금본위제를 채택하기에 이르렀고,이때부터 1차대전의 발발로 국제통화시스템으로서의 금본위제가 해체된 1914년까지의 기간을 '고전적 금본위제의 시대'(the classical gold standard era)라고 부른다.
이 기간 중 국제수지의 조정과 관련해 금본위제가 작동된 원리는 흄(D.Hume)의 가격-정화-이동 메커니즘(price-specie-flow mechanism)이었다.
이는 금본위제 하에서 국제수지의 불균형은 통화의 흐름과 이에 따른 물가의 변동을 통해 자동으로 균형을 회복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국제수지 적자를 보는 나라가 있다고 하자.외국에 판 물건보다 외국에서 사들인 물건이 더 많기 때문에 이 나라는 통화인 금이 외국으로 흘러나가게 된다.
그러면 이 나라에 있는 금의 양이 줄어드는 것(통화량이 감소하는 것)이므로 물가가 하락하게 된다.
(통화량의 변동이 물가에 영향을 주는 것은 피셔의 교환방정식을 가지고 여러 차례 설명한 바 있다)
물가가 하락하면 그 나라의 물건이 외국에서 더 잘 팔리게 되고,상대적으로 더 비싸진 외국의 물건은 그 나라에서 잘 안 팔리게 된다.
즉 수출은 늘고,수입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수지 적자는 국제수지 균형으로 돌아오게 된다.
국제수지 흑자인 나라도 통화량의 증대->물가상승->수출감소·수입증대의 과정을 거치면서 흑자폭이 줄어들고 마침내 수지 균형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격-정화-이동 메커니즘이다.
가격-정화-이동 메커니즘은 논리의 단순 명료함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경제환경이 변하면서 흄의 논리는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환경의 변화 가운데 첫 번째는 국가간 자본의 이동이 늘었다는 점이다.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자유무역주의의 확산은 상품과 생산요소의 국가간 이동을 증대시켰고,따라서 자본 또한 국가간 이동이 크게 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단기자본의 이동 역시 금본위제 하에서 국제수지의 균형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기저로 작동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작용한다.
먼저 무역수지의 적자로 인해 국내통화량이 감소하면 단기에 있어서 금리가 상승한다.
금리가 상승하면 외국으로부터의 자본유입이 발생하게 되고 적자의 일부가 보전됨으로써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국제수지는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이 같은 상황은 일부 국가에서 정부 정책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장되기도 했다.
즉 무역적자로 통화량이 감소할 경우 물가에 하방경직성이 작용한다면(즉 물가 하락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경기침체가 발생한다.
정부는 경기침체를 피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외국으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여 무역수지에서의 적자를 보전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예가 1차대전 이후 영국의 경우이다.
1차대전이 끝나자 영국은 1925년 금본위제로 복귀하면서 파운드화의 가치를 전쟁 이전 수준으로 정함으로써 파운드화의 가치를 고평가했다.
이는 무역수지의 악화를 초래하고 통화량의 감소를 가져왔으나 가격은 하락하지 않아 결국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을 맞이했던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1929년에 시작된 인류 역사상 초유의 대공황이 발생한 원인의 일부를 이러한 영국의 경기침체에서 찾기도 한다.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