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칼럼 홍준형 서울대 교수 ·공법학 >

☞ 한국경제신문 6월1일자 A39면


한국은 무서운 나라다.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불만이 비호감의 정도를 넘어 혐오와 증오로 이처럼 넓고 깊게 대중들의 의식 속에 박혀 있는 나라가 또 있을까.

그러고도 체제 불안이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그나마 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실패에는 이유가 있다.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있듯이,아니 날개가 부실하여 추락하듯이.개방과 소통의 정치를 내세우며 출범한 열린우리당이 대중들의 의식 속에 자기들만의 닫힌 리그라는 이미지로 각인된 것은 아이러니이지만,책임은 결국 열린우리당 자신의 것이다.

참여정부를 표방하면서도 '코드 인사' 논란에 빠져 동아리 정부의 인상을 준 것은 대통령과 청와대의 실책이었다.

나라와 정부가 하는 일을 국민이 잘 알지 못한다 하여 국정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인식의 격차는 홍보 부족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열린 정치를 표방하면서 결국 닫힌 아집에 빠져들고 말았다는 데 있었다.

자신을 소수파 정부로 인식했던 시작부터 동지와 적을 구분하여 적대시했던 일,시종일관 내 탓보다는 네 탓,야박함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야당의 비협조를 탓했던 일,주요 표적이 된 집단이나 세력,지역들을 겨냥하느라 애꿎은 다수 서민들의 작은 불만들을 너무 안이하게 이해했던 일,한편에서는 국가 경쟁력과 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삼불(不) 정책'이니 '양극화'니 하며 김을 뺐던 일,이 모든 일들이 대중들에게 어떻게 비쳐졌고 기억되고 있는지 곰곰 되씹어 볼 일이다.

잘나가는 모든 것은 열려 있다.

잘나가기 때문에 열려 있는 게 아니라 열려 있기에 잘나가게 된 것이다.

열린 것은 겉으론 약해 보이지만 외부 환경의 변화에 잘 적응하기 때문에 강하다.

반면 닫힌 것은 겉으론 강해 보이고 외부로부터의 충격에도 잘 견딜 것 같지만,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고 또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임계치를 넘으면 깨져 버리기 때문에 결코 강하다고 할 수 없다.

대통령과 여당은 성공시대 한나라당이라는 골리앗에 맞섰고 결국 승리했다.

그 상대가 승리의 자만에 빠져 닫혀 있었고 자신은 약했어도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상 초유의 정치 실험이 막바지에 접근하는 이 순간 이들의 노고에 대한 응답은 없다.

한때 종속 이론이 풍미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 등 제3세계 나라들은 중심부 자본주의 제국들에 식민지로 종속되어 있어 착취를 면할 수 없고 민주주의도 실현할 수 없다는 이론이었다.

당시 통용되던 처방은 중심부 자본주의 제국과의 관계를 끊고 제3세계 국가들끼리 단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제는 역사의 한 장으로 남은 소련 중심의 동구권 블록체제를 닮았던 이 해법은 얼마 가지도 못해 파산 선고를 받았다.

안팎으로 자원과 기술,문화와 산업,정보가 막힘 없이 드나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겪었던 '잃어버린 15년' 역시 폐쇄된 자만의 의식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세계 경제의 우등생으로 번영을 구가했다.

일본식 경영 방식의 우월성에 대한 자신감, 일본 문화의 우수성,그리고 일본의 탈아시아 위상에 대한 자부심으로 충만해 있었다.

지나친 자부심은 심지어 학술 서적이나 논문에서 외국 문헌을 밝히지 않고 자기네 학자들만 인용하는 경향으로도 나타났다.

외국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며 모든 것을 안에서 찾으려는 요량이었다.

자산 버블은 동시에 의식의 버블이었고 자산 디플레는 문화의 자산 디플레였다.

결국 자연스럽게 가라앉기보다는 터지기 쉬운 버블의 속성이 여지없이 발현되었다.

미국 등 경쟁국들이 글로벌화와 정보 혁명으로 얻은 새로운 성장 동력에 의해 약진하는 동안 일본은 기나긴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닫힌 것끼리의 대결에서는 더 크고 단단한 것이 승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승리했다고 자만의 빗장을 닫아 걸면 바로 그 순간부터 패배의 씨앗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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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 지방선거가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참패로 끝났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은 지방 선거에서 전국을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큰 승리를 뜻하는 '5·31 대첩'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2년 전인 2004년 17대 총선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과반 의석을 차지했던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참담한 심정일 터다.

정치란 참으로 재미있다.

2년 전 한나라당은 '전멸'의 위기감 속에서 견제 세력이 필요하다고 국민에게 읍소했다.

이번에는 열린우리당이 '싹쓸이'만은 막아 달라며 대 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는 정반대 모습이 연출됐다.

하지만 결과는 여당의 '대패(大敗)'로 나타났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던 과거 한 이동통신사의 인기 카피마냥 '민심은 움직이는 것'임을 유감 없이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면 왜 민심은 집권당에 등을 돌렸을까? 홍준형 교수는 칼럼에서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패인을 '닫힌 아집'에서 찾고 있다.

'참여정부'를 표방하면서도 △동지와 적을 가르고 △주요 표적 집단·세력·지역을 겨냥하면서 다수 서민들의 불만을 묵과하는 등의 '닫힌 태도'가 국민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대통령과 여당이 과거 거대 골리앗이었던 한나라당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개방과 소통 덕분이었다"며 '승자의 자만'을 경계하고 시종 '열린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정치 이슈처럼 지지층이 극명히 나뉘고 논리와 논리가 팽팽히 맞서는 문제일수록 주관적인 견해를 펼치거나 비판하기가 한층 까다롭다.

'내 편'으로 돌려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읽는 이들이 타당성을 수긍할 수 있도록 하려면 정교한 논리와 테크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이와 관련, '종속 이론의 사망'과 일본의 '잃어버린 15년'을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국가와 관계를 끊고 끼리끼리 단결해야 한다는 종속 이론이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채 수명을 다했고 △세계 경제 우등생으로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지나친 자부심에 빠지면서 외부로부터의 배움을 등한시한 결과 기나긴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는 사례를 제시했다.

생글 독자 여러분도 선거 결과를 분석해 보고 패자와 승자의 입장에서 각각 향후 나아갈 방향을 글로 정리해 보자.

김혜수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