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생글이 탄생한 지 벌써 1년이 됐다.

생글생글과 함께 시작된 생글기자 생활도 1년이 됐다.

짧다면 짧고,길다면 긴 1년.생글기자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문득 출범식을 갖던 날이 생각난다.

그날 우리 1기 기자들은 처음 만났고 서로를 알아가며 친해지려는 중에 과제가 떨어졌다.

결과는 잔인했다.

30명 가운데 4명의 기사만 지면에 올랐고 나머지는 모두 '킬'(신문업계에서 기사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의미로 쓰는 말)이었다.

나의 기자 생활은 그렇게 '킬'과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킬'당한 처지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그때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자'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끈질긴 노력'의 기쁨도 알게 됐다.

생글기자로 일하며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흔히 기자는 계층이 없다고 한다.

거지부터 대통령까지 모두 만나는 직업이어서다(정말 나는 운좋게도 거지와 대통령을 모두 만나봤다). 취재원과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취재원과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대단한 인내심과 유연함이 필요했다.

한번은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의 노숙자를 인터뷰하는 데 처음엔 다가가기가 난감하고 너무 두려워 무작정 기다렸다.

2시간여가 흘렀을까.

어디론가 걸어가는 그를 붙잡고 애걸복걸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눈빛을 보내며 등을 돌렸고,나는 그의 뒤를 하염없이 쫓아갔다.

두들겨 맞을 위험까지 감수하며 결국은 인터뷰를 따냈다.

기껏해야 기사에 한두 줄 들어갈 멘트를 따려고 4시간여 실랑이를 벌인 것이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난 인내심을 배웠고 돈주고도 배울 수 없는 철학과 인생관을 배웠다.

한 선배 기자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인생 과외'를 받은 것이다.

이 외에도 혁신포럼,한국은행 방문 등 생글기자라는 자리는 나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느끼게 해줬고 가르침을 줬다.

돌이켜보면 생글기자란 내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존재였다.

생글기자라는 자리를 통해 한발짝 내 꿈으로 전진했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소중한 진리들을 터득했다.

그것은 어느 카드회사의 광고처럼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정민 생글기자 puhah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