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강업계가 'M&A(기업인수·합병) 전쟁'에 휘말리고 있다.

세계화와 무한경쟁이라는 도전 앞에서 각국의 철강업체들이 '몸집 불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국적을 불문한 합종연횡에 나섰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철강기업인 인도의 미탈스틸이 왕성한 식욕으로 철강업계의 지각 변동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포스코 등도 외국 업체의 사냥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탈스틸,"I'm always hungry!"

미국의 경제 전문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5위의 부호 라크시미 미탈이 회장으로 있는 미탈스틸은 지난해부터 세계 2위 철강사인 유럽의 아르셀로(프랑스·룩셈부르크 합작사)를 타깃 삼은 인수작전을 펼쳐왔다.

올초 186억유로(약 22조5000억원)에 아르셀로를 사들이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최근엔 주주들에게 회사 인수 가격을 258억유로(약 31조2000억원)까지 높여 부르기도 했다.

인수에 성공할 경우 미탈스틸은 종업원 32만명에 연 매출 700억달러,연간 생산량 1억1300만t에 달하는 '초(招 ) 거대 철강 공룡'으로 거듭나게 된다.

생산량 기준으로 견주면 현재 업계 3위인 신일본제철의 세 배에 이르는 덩치다.

미탈은 아르셀로 외에도 중국 등 아시아 업체에 대한 관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미탈 회장은 "연간 생산량이 1억t은 돼야 진정한 글로벌 철강 기업"이라며 "지난 10년간 업계 화두는 덩치 키우기였으며 아르셀로 역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밝혔다.

○아르셀로의 반격,맞불작전

아르셀로측은 미탈스틸의 인수 공세를 방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러시아 세버스탈과의 합병 시도가 대표적이다.

아르셀로는 최근 러시아 갑부인 알렉세이 모르다쇼프 세버스탈 회장에게 자사의 주식을 넘기는 대신 세버스탈 주식 89.6%를 사들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이 실현될 경우 아르셀로는 미탈스틸의 적대적 M&A를 저지하는 동시에 미탈스틸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철강업체로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미탈스틸측이 즉각 방해공작을 펴기 시작한 데다 아르셀로 주주 다수도 합병에 반대하고 있어 그 결과는 미지수다.

아르셀로는 살아남기 위한 또다른 방편으로 캐나다 철강업체인 도파스코를 인수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신일본제철이나 중국의 바오산강철 및 포스코 등과 주식을 서로 맞교환하는 등의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한마디로 M&A의 회오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집 불리기'를 통한 공격에 '몸집 불리기'로 반격하는 양상이다.

유럽연합(EU)도 아르셀로의 지원군이다.

EU는 미탈스틸이 아르셀로를 인수하게 되면 유럽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며 아르셀로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포스코도 '위험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포스코도 'M&A 공격'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분석하고 있다.

지난 3월 월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은 칼 아이칸의 공세를 받은 KT&G와 포스코의 유사점을 들며 포스코의 경영권 위협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포스코와 KT&G의 유사점으로 △한때 국영회사로 누렸던 독점적인 지위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대기업 집단에 속하지 않았다는 점 △상호 출자 등을 통한 경영권 방어책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 △동종업계 글로벌 기업과 비교할 때 이익 대비 주가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 △비핵심 사업 분야 우량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을 꼽았다.

실제로 포스코 최대 주주는 지분 5% 이상을 갖고 있는 미국 펀드인 얼라이언스캐피털이며,포스코는 SK텔레콤 지분을 포함해 약 50억달러(5조원)에 이르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 역시 M&A 공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중국 철강업체를 인수하거나 주요 주주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가 철강 등 기간산업에 대해서는 외국 기업이 1대 주주가 되는 것을 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만큼 지분을 인수해 제2대 주주가 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


[ 일본 철강업계 "뭉쳐야 산다" ]

일본 철강업계는 국경 없는 M&A 전쟁에 공동 대처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신일본제철 고베제강 스미토모금속 등 일본의 '철강 빅 3'는 최근 외국 회사로부터 적대적 인수 시도를 당할 경우 상호 협력해 방어책을 만든다는 내용의 제휴 각서를 체결했다.

이 각서에 따르면 3사 중 어느 회사라도 인수 제안을 받으면 즉각 나머지 2개사에 통보하고 대응책을 협의하기로 했다.

인수자에 대해 사전에 정보 공개를 요구하는 방어책이나 적대적 인수 시도가 들어올 경우 이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사주는 지원책도 포함돼 있다.

또 외국 회사가 이들 중 한 회사의 경영을 지배하는 사태에 이를 경우 상호 맺은 공동 연구 및 기술 제공 협약을 취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도입하기로 했다.

이처럼 '내부의 라이벌'끼리 손을 잡게 된 것은 기술력이 뛰어난 일본 업체들이 M&A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 때문이다.

일본 철강사들은 철강 생산 재료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어 한 회사가 적대적 인수에 휘말릴 경우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안으로의 단합'을 다지고 있다.

현재 이들 3개 기업은 2002년 11월 포괄적인 제휴를 맺고 상호 간에 주식을 교차 보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