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와 환율은 본질적으로 기업 상품 등 실물시장의 움직임을 반영한다.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따라 주식가격과 환율이 변동한다는 얘기다.

기업이 강해질수록 주가는 오르고,국가경제가 튼튼해질수록 화폐가치도 올라간다.

그러나 주가와 환율은 가끔 실물 시장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외부 충격이 주어졌을 경우 실물 시장은 별 움직임이 없는데 금융시장은 큰 타격을 받기도 한다.

금융시장은 실물시장에 비해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금융시장은 왜 조그마한 변수에도 크게 출렁거릴까.

◆실물과 따로 움직이는 금융시장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가격변화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상식적으로 주가 환율이 변동할 경우 해당 기업이나 통화의 내재가치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알아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금융 시장은 실물과 따로 움직이는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주식시장은 이미 발행된 주식들이 거래되는 시장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활동하고,주식은 주식대로 거래되는 괴리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이 사고파는 주식거래는 기업의 직접적인 자금조달 행위와는 무관하다는 얘기다.

외환시장에서도 실제 무역에 필요한 외환을 확보하기 위한 거래가 전체의 3%에 불과할 정도로 투기적인 매매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0초 뒤에 더 비싸게 매수주문을 낼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수십억달러의 외환을 과감하게 사들이는 곳이 바로 외환시장이다.

이 때문에 외환딜러들은 각국의 변화하는 경제 상황보다는 시세판만 쳐다보면서 주문을 내고,주식시장의 데이트레이더(day-trader)들은 거래량과 주가변동의 진폭만 보면서 주식을 사고판다.

◆시세차익 겨냥한 금융거래가 대부분

실물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기업들은 공장을 지은 뒤 직원을 채용하고 원재료를 구입해 물건을 만든 뒤 시장에 내다팔아 이익을 남긴다.

원재료 가격이 비싸졌다고 해서 원재료 구매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의 대부분은 시세차익을 겨냥한 것들이다.

지금 싼값에 샀다가 나중에 비싼 값에 팔려는 의도로 주식을 매매하고 외환을 거래한다.

워런 버핏과 피터 린치,조지 소로스 등이 이 같은 금융거래의 대가들이다.

시세차익을 노리는 거래에는 투기 심리가 가미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투자자들은 달러화 표시 자산을 매각하고,유로 엔 원화 표시 자산 등을 사들인다.

최근 달러 약세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자 외국투기자본은 엔화 유로화 표시 자산의 보유비중을 높였다.

그러나 미국의 고금리 정책이 당분간 계속돼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선다는 소식이 들리자 갑자기 달러를 매수하는 세력으로 돌변하기도 했다.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주식시장이 5월 말 폭락한 것도 국제 금융시장의 거대 자본이 미국시장으로 돈을 빼갔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지난 4월25일부터 한 달간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5조원 이상 주식을 순매도했다.

◆'국제 핫머니 규제하자'는 주장도 나와

금융시장이 큰 폭으로 변동하는 것은 실물시장에 비해 자본이동에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업은 환율변동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해외 거래선을 바꾸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는 보유 외화자산을 금방 처분할 수 있다.

순식간에 투자 자산을 재편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본의 쏠림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 미국 예일대 교수는 1978년 "국제 투기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단기성 외환거래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자"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토빈세(稅)로 널리 알려진 핫머니 규제방안이다.

그러나 투기성 외환거래를 규제할 경우 장기적이고 생산적인 거래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비판에 밀려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


[ 선물.옵션 등 금융시장 효율성 높여 ]

◆ 파생금융상품의 역할

주식시장의 선물 옵션,외환시장의 선물거래 스와프(swap) 등 파생금융상품은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훌륭한 상품이다.

그러나 실물거래를 뒷받침하거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세차익을 겨냥한 투기수단으로 활용될 경우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더욱 높이는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

거의 모든 파생금융상품은 매우 적은 증거금만으로도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거래량을 과도하게 늘린다.

이 때문에 가격상승기에는 폭등을,가격하락기에는 폭락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주식시장에서 나타나는 왝더독(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나 역외선물환시장(NDF)이 국내 외환시장을 좌우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부작용들이다.

그러나 파생금융상품을 위험회피 수단으로 적절하게 활용할 경우 손실이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외국인들이 보유주식을 대량으로 처분할 때 먼저 주가지수 선물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가격변동위험을 줄이는 것은 대표적인 위험회피 사례다.

수출대금으로 받을 달러를 선물시장에서 미리 원화로 교환하는 것도 훌륭한 위험회피 방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