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가장 고민스러운 대목이 바로 첫머리일 터다.

첫 인상이 사람의 이미지를 좌우하듯 글 역시 첫 문장·첫 단락이 '독자'(평가자)의 시선을 다음으로 이동시키느냐 마느냐를 판가름내기 때문이다.

'시선'을 붙잡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부드러운 시작'이다.

잘 알려진 우화나 이야기,책에서 발췌한 내용 등을 인용해 '친숙함' 이나 '흥미'를 끌어낸 후 하고 싶은 주장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박효종 교수는 칼럼에서 "정치의 기본은 행복과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나 실망을 주지 않는 것"이라는 전제 아래 정부와 정치인이 '정치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꼭짓점 댄스 등을 동원한 '선거쇼'와 함께 헛 공약을 남발해 유권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거나, 정부가 앞장서 특정 지역의 부동산 거품 붕괴를 거론하며 불안감을 주는 행위들은 정치의 기본에서 동떨어진,요새말로 '오버'라는 평가다.

이 같은 주장을 펼치기 앞서 박 교수는 괴테의 명작 '파우스트'에 나오는 일화로 첫 단락을 열고 있다.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정부와 정치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무거운 주제지만 '파우스트'를 읽은 사람이건 아니건 옛날 이야기 형식을 빌린 첫머리에 흥미를 가질 법 하다.

칼럼의 논지 흐름을 살펴보자.

(도입) 파우스트는 실존하지 않는 여인의 환상에 넋이 나갔다.

(본론)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앞두고 출마한 후보자들이 무수한 공약을 내걸고 표심을 유혹하고 있다.

정부 역시 각종 장밋빛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가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고 있다.

(결론) 정부와 정치인은 정치의 본질이 국민들이 안정감을 갖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의 시작에서 일화나 이야기를 인용할 때 주의할 점은 차후 이어질 내용과 긴밀히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정부나 정치인의 '오버'가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가 모든 것을 해주리라는 허황된 기대를 부추기거나 과도한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첫 단락에 인용된 '파우스트의 여인'은 바로 정치가 양산하고 있는 '환상'을 은유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포석인 것이다.

주장과 딱 맞아떨어지는 적절한 '이야기'일 때 그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김혜수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