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앤더슨은 태평양 해상에서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앤더슨이 엄청난 재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1950년대 초 호주의 예보관들이 처음으로 태풍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앤더슨'처럼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의 이름을 붙여 불렀다고 한다.

강풍과 폭우를 동반해 피해를 주는 태풍이 얼마나 미웠으면 그랬을지 짐작이 간다.

올해 첫 태풍 '짠쯔'가 지난 9일 필리핀 동쪽 해상에서 발생했다.

'짠쯔'는 마카오에서 만든 이름으로 '진주(pearl)'라는 뜻이다.

한때는 심리적으로나마 태풍이 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성 이름을 붙이기도 했었다.

그러다 세계 여성단체들로부터 항의도 받고, 태풍의 영향권에 있는 국가들 안에서 영어 이름만 사용하는 데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세계기상기구 산하 태풍위원회(태풍위)에서 이름 변경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00년 국제적으로 공식화된 태풍 이름 140개가 탄생했다.

남북한과 중국 미국 일본 필리핀 태국 등 태풍 영향권에 있는 14개 회원국에서 각각 10개씩 내 만들었다.

'개미,나리,장미,미리내,노루,제비,너구리,고니,메기,나비.' 부르기 쉬우며 곱고 친근한 이미지의 이 단어들이 우리나라가 제출해 사용하고 있는 태풍 이름이다.

북한도 '기러기,도라지,갈매기,소나무,버들' 등 10개가 있다.

특정 태풍으로 인해 심각한 재해를 입은 국가는 태풍위에 이름 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

작년 11월 열린 38차 태풍위에서는 현재 사용 중인 이름 중 나비,맛사(matsa:물고기 암컷·라오스),룽왕(龍王·중국)을 2007년부터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비'는 지난해 우리나라 동해안과 특히 일본에 큰 피해를 줘 일본에서 퇴출을 요청함에 따라 태풍 이름에서 영구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2003년 우리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 '매미'는 북한에서 붙인 이름이었으나 2005년 제명돼 지금은 '무지개'로 바뀌었다.

태풍은 지역에 따라 동남아시아권에선 '타이푼(typhoon)',인도양 부근에선 '사이클론',미국 동남부 해안 지방에선 '허리케인' 등으로 불린다.

'윌리윌리'는 호주 동북부에서 발생하는 태풍을 가리켰으나 최근엔 이 지역에서도 사이클론이라 부른다.

강력한 태풍이 발생하는 해에는 보통 수마(水魔)가 할퀴고 지나간다.

이때 흔히 따라붙는 말에 '초토화(焦土化)'라는 게 있다.

'초토'는 말 그대로 '불에 타서 검게 된 흙'이란 뜻이다.

한자 焦가 '(불에) 그을리다'를 뜻한다.

따라서 '초토화'란 말은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 현장을 나타낼 때 적절한 표현이다.

수재(水災)를 당한 곳이라면 '초토화' 대신 문맥에 따라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따위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에서는 단어마다 갖고 있는 의미자질에 유념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단어와 단어 사이의 '호응' 관계를 살펴야 한다.

단어들의 연쇄로 이뤄지는 문장에서 이 의미호응 관계를 잘못 다뤄 비문이 되는 경우가 꽤 많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