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미국은 무역 자유화를 강조하며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해 시장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그 동안 미국이 쌓아 왔던 경제적 우위를 세계 시장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미국은 19세기 초 공업화 초기 단계에서 가장 강력한 보호주의를 실시한 나라였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자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미국 시장에 대한 저가 물량 공세에 들어갔다.

이는 전쟁으로 그동안 막혀 있던 무역의 길이 트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그 이면에는 막 성장하려는 미국의 공업을 초토화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1816년 영국의 재무장관이라는 사람이 의회에서 "저가의 물량 공세를 통해 요람에 있는 미국의 위험한 제조업자들을 질식시키기 위해서…"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1820년대 미국은 영국산 면직물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세를 인상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

당시 미국의 면직물 공업은 1789년 슬레이터가 로드 아일랜드에 기계화된 생산 공장을 설립한 이래 한창 성장 가도로 들어서던 단계였다.

일찍이 해밀튼은 이 같은 상황을 직시하고 정부의 보호 아래 새로 설립된 공업의 발전을 꾀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른바 '유치산업 보호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과 미국의 면직물 가격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영국이 아무리 의도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덤핑을 했다고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생산 비용에 차이가 없었다면 대서양을 건너 제품을 수송하는 데 드는 비용을 포함하고도 더 싸게 물건을 공급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들 두 나라 사이의 가격 차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있었는가 여부이고, 또 하나는 이른바 학습 효과에 따른 기술 발전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산 비용을 단기와 장기로 구분하여 장기평균비용(LAC)은 단기평균비용(SAC)을 감싸 안는 것과 같은 형태로 그린다(그림 참조). 이것은 생산이 단기에서보다 장기에서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생산에서 단기라 함은 고정 비용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장기라 함은 고정 비용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모든 비용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기평균비용(그림의 SAC1)의 최저점에서 생산할 경우(Q*) 장기평균비용(그림의 LAC1)은 그 아래에 위치하게 되고 장기평균비용과 단기평균비용은 SAC1의 최저점보다 왼쪽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SAC와 LAC의 최저점이 일치하여 장·단기적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때는 LAC의 최저점(그림에서 Q2의 생산)에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장기평균비용이 점차 감소하면서 최저점에 이르는 과정을 우리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라고 부른다.

생산의 규모가 커질수록 평균 비용이 줄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과 영국의 생산 비용에 차이가 나는 것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은 일찍이 산업혁명을 수행함으로써 상당한 시장 규모를 확보했고 따라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었던 반면 미국은 공업화 초기로 아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생산 과정에서 학습 효과에 따른 효율성의 증대는 평균비용 곡선을 아래쪽으로 이동시키는데 이런 점에서도 영국은 미국에 앞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영국은 LAC2를 따라 Q2에서 생산했고 미국은 LAC1 선상에 있는 Q1에서 생산했기 때문에 AC1과 AC2라는 엄청난 비용의 차이가 생겼다는 것이다.

미국도 공업화 초기엔 약자의 입장에서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했던 것을 생각하면,오늘날 다른 나라에 개방을 요구하면서도 뒤통수가 간지럽지 않나 모르겠다.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