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칼럼 이제민 연세대 교수 · 경제학 >

☞ 한국경제신문 2006년 5월11일 A39면

최근 일어난 몇몇 사태는 한·미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평택에서는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군경과 시위대가 충돌하고,한·미 FTA에 대한 반대도 격렬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미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라크전쟁에 폴란드가 파병한 것을 상기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미국의 동맹국도 아닌 이 동구 국가가 파병한 데 대해 많은 사람이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그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폴란드만큼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온 나라도 드물다.

18세기 말에는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해 분할되었다가 1차대전 후 독립하였지만,2차대전 때는 독일과 소련 간의 전쟁터가 되어 인구의 20%가 사망하는 대참사를 당하였다.

전쟁 후에는 소련에 잡혀서 민주주의는 물론 경제 발전도 이루지 못하다가 1990년대 초반에야 그 손아귀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그러니 명분 없는 이라크전에서라도 미국의 호의를 사기 위해 파병을 한 것이 이해가 간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도 이웃 강대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무던히 어려움을 겪은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20세기 후반에 들어 주권국가가 되고 민주화도 달성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이 '경제기적'을 이루는 데는 아무래도 미국과의 관계가 크게 작용하였다.

물론 한국의 경제 발전에는 교육열이나 상대적 법치의 존재,적절한 산업정책 등 스스로의 능력도 중요하였다.

그러나 폴란드인의 그런 것이 한국보다 못했겠는가.

폴란드는 2차대전 전까지 그런 면에서 한국과 비교가 안 되는 나라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 60여년간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을 보고 '부러워 죽는' 폴란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이 이런 성취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현대의 미국이 영토욕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국도 20세기 초까지 제국주의 국가였지만 1930년대부터는 경제력에 바탕을 둔 패권 추구로 군사기지는 갖지만 영토는 탐내지 않는 전략으로 바꾸게 되었다.

지금 많은 미국의 지식인들이 건국 시기 공화국의 정신이 사라지고 제국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지만,미국이 적어도 과거와 같은 제국주의로 돌아갈 확률은 낮아 보인다.

일본과 중국은 어떤가.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결코 고이즈미 개인의 성향 때문이 아니라 수십년간 일본 지도층에 의해 철저하게 준비된 일관된 우경화의 일부분이다.

그 연장선상에는 결국 '일본 열도를 향한 단검'과 같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을 실현한다는 계획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가 자기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가.

이것 역시 결코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중국은 위대한 전통이 모욕 당한 과거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13억 인구가 모인 나라다.

이런 나라가 부강하게 되면 그 다음 순서는 무엇인가.

그 답은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독일인의 그러한 정신세계가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다.

결국 조만간 한국은 2차대전 전 폴란드가 독일과 러시아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영국과의 동맹에 의존한 것처럼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사태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지금 미군기지 이전과 한·미 FTA에 반대하는 분들이 이런 구도를 인정한 위에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면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한·미 FTA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런 틀에서 보아 FTA보다는 소원해진 한·미관계를 정치쪽에서 푸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이 성립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군기지 이전과 한·미 FTA 반대론이 그런 전제 위에 서 있지 못하다면 한국민 전체에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양심세력을 자처해온 분들이 양식도 함께 가져주기를 기대해본다.


< 사회적 쟁점 넓은 시야 갖는 훈련을 >

최근 우리 사회를 편가르는 핫이슈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 갈등이 있다.

두 이슈 모두 단칼에 옳고 그름을 가르기 힘든 문제다.

경제·외교적 역학관계와 당사자 간의 엇갈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한 국익 계산을 기본에 깔면서도 사회적 갈등이나 피해를 줄여줄 완충장치를 모색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일부 반대론자들을 중심으로 '감정적' 선동을 앞세워 극단적 주장을 관철하려는 움직임이 나오는 것은 우려스럽다.

FTA 반대론자 일부는 '제2의 한·일합방'이라거나 '굴욕 협정'이라는 말로 민족감정을 자극한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 시위에서는 '1980년 광주와 다를 바 없다'거나 '주한 미군 철수'를 외치는 구호가 난무하기도 했다.

이제민 교수는 칼럼에서 두 사안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을 펴더라도 국제 정세 구도 위에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해야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는 근거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방법으로 폴란드의 이라크 파병을 예로 들고 있다.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폴란드가 미국의 호의를 사기 위해 명분도 없는 이라크전에 파병하는 현실과 그 이유를 우리나라의 현주소와 나란히 놓는다.

일본과 중국 틈에 낀 한국이 '미국'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실리를 챙겨야 함을 시사하기 위해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FTA나 미군기지 이전 모두 '전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정답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부작용이나 외부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정부는 세계 경쟁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한 무역전략과 국가 안보 정책을 추구하되,'개별 피해자'들에 대한 배려에도 소홀해서는 안된다.

우리 학생들도 찬반이 팽팽한 사회적 쟁점을 바라볼 때 넓고 다양한 시야를 가지는 훈련을 하길 바란다.

김혜수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