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빵,가방,냄비,구두,가마니,붓,부처….'

이들 말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외래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혀 외래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처럼 외래어 가운데 오랜 세월을 지나며 자연스럽게 우리말화한 것을 따로 '귀화어(歸化語)'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외래어'라고 하는 말도 개념적으로는 '외국어'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외래어란 '외국어에서 빌려와 마치 우리말처럼 쓰이는 단어'를 가리킨다.

카메라,모델,라디오 같은 것들이 외래어인데 이들은 엄연히 국어의 울타리 안에 있는 말이다.

이에 비해 스쿨,북,랭킹,오픈 같은 말은 굳이 쓰지 않아도 될 '외국어'다.

'담배'는 포르투갈어 'tabacco'에서 왔다.

옛날에는 '담바고'로 쓰이다가 끝의 '고'가 줄어들면서 단어 자체도 변형돼 '담배'로 굳어진 말이다.

'빵' 역시 포르투갈어 'pao'(발음은 '빠웅')에서 유래한 말이다.

미국보다 앞서 일본과 교역을 해온 포르투갈의 말이 영어의 'bread'보다 먼저 일본에 전해져 '방(パン)'으로 쓰이던 게 우리나라로 넘어와 '빵'이 됐다.

'가방'의 어원은 네덜란드어 'kabas'다.

이를 일본에서 '가방(かばん)'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뿌리내린 것이다.

지금은 외래어라는 인식이 없을 정도로 우리말 속에 완전히 동화된 말이다.

'냄비'는 일본어 '나베(なべ,鍋)'에서 온 말이다.

우리 전래의 솥과는 달리 밑바닥이 평평하게 생긴 일본식 조리 기구를 가리킨다.

과거에는 '남비'가 표준어였으나 1989년 새로운 표준어사정 원칙이 나오면서 '냄비'를 표준으로 했다.

'구두' 역시 일본어 '구쓰(くつ,靴)'가 변한 말이다.

구두가 들어온 초기에는 서양신이라 해서 양화(洋靴)라 했는데,일본에서 이를 '구쓰'라 불렀던 것이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구두'로 불린 것이다.

'가마니'는 곡식,소금 등을 담기 위해 짚을 엮어 큰 자루처럼 만든 용기를 말한다.

가마니는 또 그 자체로 '한 가마니,두 가마니' 할 때처럼 양이나 무게를 헤아리는 말로도 사용된다.

이 역시 우리 고유어가 아니라 일본의 '가마스(かます)'에서 비롯된 말이다.

가마니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섬'을 썼다.

그런데 '섬'은 새끼와 짚을 사용해 곡식을 담기엔 성긴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꼼꼼하게 짜인 가마니에 밀려 섬은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하지만 단위명사로는 남아 있어 지금도 가마니와 섬이 함께 쓰인다.

한자어로는 '석(石)'이라고도 하며 모두 같은 의미다.

'붓'도 본래부터 우리가 쓰던 말이 아니다.

이 말은 중국어 '삐(筆)'가 어원이다.

우리 한자음으로는 '필'인 이 한자는 중국발음으로는 '삐'에 가깝고(현행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비') 더 멀리 고대에는 '붓'과 비슷하게 발음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중국에서 물건이 전래되면서 말도 따라 들어와 오랜 세월 변형되지 않은 채 한편에서 순우리말처럼 굳은 것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