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한국경제신문 주필 >
☞한국경제신문 2006년 5월2일자 A39면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오는 18일께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메이저 최고경영자들과 만나 '미국차 살리기'를 위해 머리를 맞댈 예정이라고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연방정부 지원 없이 GM과 포드가 파산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고 보면 우리로서도 이 만남에 비상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사가 실린 지난달 29일자 국내 신문의 첫머리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구속 기사로 도배질됐다.
그동안 재계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국민이 이번 사태처리에 있어 국가전략산업의 선봉에 서있는 현대차그룹의 경영위기와 대외 신인도 추락을 생각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이는 깡그리 무시됐다.
한국과 미국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을까.
미국은 자동차산업의 자존심을 살리려 대통령까지 나서는 마당에 우리는 세계 5위 자동차회사를 꿈꾸며 글로벌전략에 숨돌릴 틈도 없는 자동차 기업을 몽둥이질을 해대는 꼴이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죄가 있으면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법의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인신구속으로 압박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검찰과 법원이 내세운 '증거인멸의 우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의심해 보는 것이 정부의 정체성이요,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사회의 분위기다.
잘사는 사람,못사는 사람을 억지로 나누는 '양극화'를 이슈로 등장 시켰고,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는 고위 사정당국자들의 언급이 이어지는가 하면,어느 장관은 공공연히 '사회적 승자가 복지를 위한 돈을 더 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인들은 사재를 털어 사회공헌기금을 내야만 하고,한편에서는 얼마를 내야 체면치레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이 지금 수많은 우리 기업들의 처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정 회장 구속에 대해 '국가 자부심의 원천을 희생시키는 일'이라고 논평했다.
국력은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말은 기업인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변명하는 얘기가 아니라,국가지도자들이 늘상 강조하는 구호다.
그런데도 경제력의 원천인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특히 대기업은 비리의 온상쯤으로 매도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정부까지도 그런 인식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정말 걱정스런 현실이다.
지금 기업들은 그야말로 치열한 생존다툼을 벌이는 글로벌 경쟁에 직면해 있다.
외국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혼신을 다해도 힘겹고,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이 감싸주고 격려하고 지원해도 될까 말까한 것이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이다.
솔직히 툭하면 터지는 기업 비자금 논란의 뿌리는 어디인가 묻고 싶다.
과거의 잘못된 정치·사회 메커니즘의 산물이 아닌가.
이젠 그런 잘못에서 벗어나야 하지만,지금에 와서 모든 것을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국민의 눈을 가리고,우리는 그래도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제스처에 국민들의 생활만 더 고달파질 따름이다.
물론 기업들도 과거를 단절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하고,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투명한 경영모델 정립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면 이를 지켜 보는 인내도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말끔히 정리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경제력이 국력이고 국가발전의 요체라는 점은 미국이든 우리든 다를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은 기업을 감싸고 한국은 옥죄기만 한다.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기업들의 변신 노력,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열정,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지원하고 격려해주는 풍토가 아쉽다는 얘기다.
나라경제가 절단나고 난 뒤의 경제정의나 투명성은 버스 떠난 뒤 손 드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 기업을 보는 시각 그다지 곱지는 않아 >
기업이란 무엇일까.
누구를 위해 기업은 존재하는 걸까.
'법적 인간(법인)'인 기업은 인간처럼 태어나고 성장하며,쇠락하고 죽기도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시장경제의 주도자이자 국제교역의 첨병이다.
글로벌 시대에 기업은 한 나라의 국력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 나라의 기업의 질과 숫자가 바로 국가 경쟁력을 의미할 정도다.
경제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공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선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다지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거대 기업들이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으며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경영관행들이 없지 않았고 이것이 사회적 반감을 사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기업을 비리의 온상으로 보거나,사회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최근의 사회 분위기도 분명 문제는 있다.
또 기업인의 '사회 환원'이나 기업의 사회공헌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정당한지도 냉정히 따져봐야 할 때가 됐다.
기업의 궁극적인 존재 의의는 다른 무엇보다, 생산하고 고용하며 세금을 내는 것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계민 주필은 칼럼에서 "경제력이 국력이고 국가발전의 요체인 글로벌 시대에 국가 경제력의 원천인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고 그 공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기업 비자금 논란 등 기업의 '과오'는 과거 잘못된 정치·사회적 메커니즘이 총체적으로 빚어낸 산물인 만큼 기업만 단죄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이 주필은 "기업의 과거 청산이 필요하지만 근대한국의 발전사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기업의 과거를 한 칼에 정리할 수는 없는 만큼 기업의 변신 노력을 지켜보고 격려해주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어떤 주장을 펼칠때는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탄탄해야 한다.
이 주필은 다른 나라(미국)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기업 활동을 격려한다는 대조적인 사례를 들어 주장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생글 독자 여러분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글로 정리해보자.
김혜수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2006년 5월2일자 A39면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오는 18일께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3대 자동차메이저 최고경영자들과 만나 '미국차 살리기'를 위해 머리를 맞댈 예정이라고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연방정부 지원 없이 GM과 포드가 파산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지,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고 보면 우리로서도 이 만남에 비상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사가 실린 지난달 29일자 국내 신문의 첫머리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 구속 기사로 도배질됐다.
그동안 재계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국민이 이번 사태처리에 있어 국가전략산업의 선봉에 서있는 현대차그룹의 경영위기와 대외 신인도 추락을 생각해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이는 깡그리 무시됐다.
한국과 미국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을까.
미국은 자동차산업의 자존심을 살리려 대통령까지 나서는 마당에 우리는 세계 5위 자동차회사를 꿈꾸며 글로벌전략에 숨돌릴 틈도 없는 자동차 기업을 몽둥이질을 해대는 꼴이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죄가 있으면 벌을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법의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인신구속으로 압박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검찰과 법원이 내세운 '증거인멸의 우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의심해 보는 것이 정부의 정체성이요,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사회의 분위기다.
잘사는 사람,못사는 사람을 억지로 나누는 '양극화'를 이슈로 등장 시켰고,화이트칼라 범죄를 엄단해야 한다는 고위 사정당국자들의 언급이 이어지는가 하면,어느 장관은 공공연히 '사회적 승자가 복지를 위한 돈을 더 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인들은 사재를 털어 사회공헌기금을 내야만 하고,한편에서는 얼마를 내야 체면치레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이 지금 수많은 우리 기업들의 처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정 회장 구속에 대해 '국가 자부심의 원천을 희생시키는 일'이라고 논평했다.
국력은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말은 기업인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변명하는 얘기가 아니라,국가지도자들이 늘상 강조하는 구호다.
그런데도 경제력의 원천인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특히 대기업은 비리의 온상쯤으로 매도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정부까지도 그런 인식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정말 걱정스런 현실이다.
지금 기업들은 그야말로 치열한 생존다툼을 벌이는 글로벌 경쟁에 직면해 있다.
외국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혼신을 다해도 힘겹고,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이 감싸주고 격려하고 지원해도 될까 말까한 것이 우리 기업들의 현주소이다.
솔직히 툭하면 터지는 기업 비자금 논란의 뿌리는 어디인가 묻고 싶다.
과거의 잘못된 정치·사회 메커니즘의 산물이 아닌가.
이젠 그런 잘못에서 벗어나야 하지만,지금에 와서 모든 것을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국민의 눈을 가리고,우리는 그래도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제스처에 국민들의 생활만 더 고달파질 따름이다.
물론 기업들도 과거를 단절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하고,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투명한 경영모델 정립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면 이를 지켜 보는 인내도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말끔히 정리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경제력이 국력이고 국가발전의 요체라는 점은 미국이든 우리든 다를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은 기업을 감싸고 한국은 옥죄기만 한다.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기업들의 변신 노력,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열정,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지원하고 격려해주는 풍토가 아쉽다는 얘기다.
나라경제가 절단나고 난 뒤의 경제정의나 투명성은 버스 떠난 뒤 손 드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 기업을 보는 시각 그다지 곱지는 않아 >
기업이란 무엇일까.
누구를 위해 기업은 존재하는 걸까.
'법적 인간(법인)'인 기업은 인간처럼 태어나고 성장하며,쇠락하고 죽기도 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시장경제의 주도자이자 국제교역의 첨병이다.
글로벌 시대에 기업은 한 나라의 국력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그 나라의 기업의 질과 숫자가 바로 국가 경쟁력을 의미할 정도다.
경제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공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선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다지 곱지 않은 게 사실이다.
거대 기업들이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으며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불투명한 경영관행들이 없지 않았고 이것이 사회적 반감을 사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기업을 비리의 온상으로 보거나,사회 양극화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최근의 사회 분위기도 분명 문제는 있다.
또 기업인의 '사회 환원'이나 기업의 사회공헌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정당한지도 냉정히 따져봐야 할 때가 됐다.
기업의 궁극적인 존재 의의는 다른 무엇보다, 생산하고 고용하며 세금을 내는 것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계민 주필은 칼럼에서 "경제력이 국력이고 국가발전의 요체인 글로벌 시대에 국가 경제력의 원천인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고 그 공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기업 비자금 논란 등 기업의 '과오'는 과거 잘못된 정치·사회적 메커니즘이 총체적으로 빚어낸 산물인 만큼 기업만 단죄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이 주필은 "기업의 과거 청산이 필요하지만 근대한국의 발전사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기업의 과거를 한 칼에 정리할 수는 없는 만큼 기업의 변신 노력을 지켜보고 격려해주는 풍토가 필요하다"고 결론짓는다.
어떤 주장을 펼칠때는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탄탄해야 한다.
이 주필은 다른 나라(미국)에서 대통령이 나서서 기업 활동을 격려한다는 대조적인 사례를 들어 주장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생글 독자 여러분도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글로 정리해보자.
김혜수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