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어! 섹시 마일드.'

1997년 한 생활용품 회사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샴푸 광고 문안이다.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미국 여배우 멕 라이언을 수녀복 차림의 모델로 내세워 화제가 됐었다.

화제가 된 또 다른 까닭은 전체적으로 미묘한 중의성을 띠면서도 어법적으로 맞지 않는,이른바 시적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섹시 마일드(sexy mild)'라는 표현이 논란의 초점이다.

'섹시'는 동적이며 적극적인 의미 자질을 가진 단어다.

이에 비해 '마일드'는 정적이며 소극적인 개념이다.

이런 상충하는 개념의 표현이 허용되는 것은 오로지 시적 표현에서만 가능하다.

아주 단순화해서 말하면 '거칠면서 부드러운 천'과 같은 말이라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게 요지다.

물론 이 광고 문안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시적 표현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언어의 '긴장'을 유발하는 게 1차 목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어법이란 잣대로 따질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는 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의미 자질들을 함께 붙여 쓸 수 없다는 점이다.

모든 단어에는 고유한 의미 자질과 그에 따른 용법이 있다.

이것이 틀어지는 이유는 개인적인 언어 경험과 학습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개 단어 본래의 뜻을 정확히 모르고 사용하거나 무심코 입에 익은 대로 쓰는 데서 비롯된다.

가령 '이 사과는'이란 주제어가 주어지면 우리는 그 다음에 오는 말이 '크다,빨갛다,썩었다' 따위가 될 것임을 자연스레 안다.

그것은 '사과'라는 단어가 뒤따르는 말에 특정한 단어만 허용(선택 제약)하기 때문인데 이들을 '계열체'라 한다.

계열체에 있는 단어들이 연결된 형태를 통합체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문장이다.

'이 사과는 빠르다'라고 했을 때 누구나 이 말이 비문임을 아는 것은 단어들 간의 선택 제약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의미 자질에 따른 선택 제약을 쉽게 구별하는 잣대는 개개의 단어를 '긍정적(positive)-부정적(negative)' 의미 범주로 나누는 것이다.

가령 단어 용법에서 흔히 틀리기 쉬운 게 '탓-덕분'의 구별이다.

'그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합격한 것은 열심히 공부한 탓이다'와 같은 문장에 쓰인 '탓'은 '덕분'을 잘못 쓴 것이다.

'탓'은 '네 탓 내 탓'에서처럼 부정적 개념으로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의미 자질의 어울림은 글쓰기에서 기초적인 사항이지만 평소 훈련돼 있지 않으면 오류에 빠지기 쉽다.

경제 관련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 중 '인플레이션 기대감'이란 말도 적절치 않은 어울림이다.

'기대(期待)'란 '어떤 일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것'으로 긍정적 개념으로 쓰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경우는 없으며 도리어 억제해야 할 대상이다.

인플레이션은 부정적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뒤에는 '기대감'보다 '우려감'이나 '위기감' 등 문맥에 따라 적절한 말이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