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쇼핑족이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의료쇼핑족'이란 정부가 대주는 돈으로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약을 타고 진찰을 받는 저소득층을 일컫는 말.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나라 살림살이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의료쇼핑족'이 국고(國庫)를 낭비하는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정부는 이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예산을 최대한 아끼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실태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정부에서 이들에 대해 철퇴를 내리겠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걸까.

국가 빈곤정책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4월27일 발표한 '의료급여 실태조사'를 보자.

◆'의료쇼핑' 어느 정도?

경기도 수원에 사는 박모씨(44·무직)는 지난 한 해 동안 711번 병원에 가서 1만645일치의 약을 처방받았다.

매일 병원 두 곳에서 진료받고,진료 때마다 한 달분의 약을 탄 셈이다.

박씨가 다닌 병원은 모두 62곳. 진료받은 질환도 위장병 불면증 관절통 설사 등 41가지나 된다.

박씨가 이렇게 해서 진료비로 쓴 돈은 3270만원(약값 2270만원).그 돈은 정부가 다 대줬다.

나라가 생계를 보장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에 속하면 병원 진료비와 약값 전액을 정부가 대주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박씨가 약을 타서 다른 곳에 팔아먹은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전북 김제시에 사는 의료급여 수급권자 이모씨(75ㆍ여)는 지난해 하루 평균 5개 병원을 찾았다.

외래 1980일,투약일 5961일로 총 진료일 수가 7941일에 달했고 총 진료비는 2803만원이었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박모씨(60)는 보험 사기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박씨는 장애인 등 의료급여 수급자 13명을 꾀어 병·의원에서 약을 처방받았다.

그는 공모한 약국에 처방전을 내고 약 대신 돈을 받는 수법으로 모두 2000여만원을 챙겼다.

사기극에 협조한 약사 14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공무원 의료쇼핑자 병원 등 이해 당사자 3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함께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우선 돈을 대는 정부는 1977년 의료급여제도를 도입한 뒤 30년 동안 급여 지출을 사실상 방치해왔다.

돈을 쓰기만 했지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는 한 번도 체크하지 않았다.

27일 발표 때 그동안 적발한 의료쇼핑 혐의자 수를 내놓지 못한 것이 그 증거다.

관리가 소홀하다 보니 일부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은 병원비를 말 그대로 '펑펑' 써댔다.

복지부가 건강보험 가입자 중 소득 수준이 가장 적은 최하위 등급계층 176만명과 의료급여 수급권자 176만명의 진료명세를 비교해 봤더니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의 1인당 진료비는 187만3000원으로 건강보험 최하 등급 76만1000원보다 2.5배가량 높았다.

의료급여 수급권자 중에서도 진료비가 완전 면제되는 1종 수급권자의 1인당 진료비는 273만원으로 2종(80만원)보다 3배 이상 많았다.

◆대책은 무엇인가

정부는 의료쇼핑족과 과잉·허위청구 의료기관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고 조사도 철저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의료급여일수(병원 등에서 투약,진찰을 받은 일수)가 500일 이상인 사람 중 '의료쇼핑족'으로 의심되는 2만3400명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밀착 상담을 통해 진료비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중 담당자(의료급여관리사)를 234명에서 507명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료급여 수급자 조회 등의 조사권을 넘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과잉진료가 의심되는 상위 10%,445개 병·의원 및 약국 등에 대해서도 '특별실사대책반'을 가동해 색출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이와 함께 약물 오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도 검토하고 있다.

수급자에게 담당 의사를 지정하는 '주치의제도',수급자 1인당 연간 의료 급여비를 제한하는 '인두제',의료기관별 의료급여 청구액 한도를 계약하는 '총액계약제도' 등이 강구되고 있다.

박수진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