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 한국경제신문 2006년 4월25일자 A39면

삼성그룹 이재용씨에 이어 현대자동차 그룹 정의선 사장의 상속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상속 관련 법규와 파괴적 기업지배구조론이 갖고 있는 문제를 드러내 주는 사례들이다.

부의 세습을 막는다는 정언(定言)적 명분은 아름답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 자본주의를 질식시키고 해체하기에 이를 것이라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해볼 만한 시점에 이르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제도 하에서 한국 기업의 경영권은 그 존속 시한이 30여년에 불과하다.

세법은 상속 재산의 절반까지 국가가 강제적으로 박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35%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부모 잘 만난 불로소득에 50%의 세율이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속에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기업 소유자의 낮은 지분에 대해서는 언제든 경영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수많은 규정과 법률이 촘촘이 감시망을 펴놓고 있다.

공정법은 공정법대로,금산법은 금산법대로,증권거래법은 또 그것대로 여차하면 경영권을 박탈하기 위해 도처에 지뢰를 심어놓은 상황에서 비록 창업자라 하더라도 온전히 경영권을 지켜내기가 어렵다.

더구나 50%를 삭감해 버리고 나면 상속자의 경영권 유지는 불가능하다.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더욱 그렇다.

바로 그 때문에 대기업 경영권의 상속을 시도하는 그 어떤 노력도 곧바로 불법이거나 혹은 편법으로 치닫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반(反)기업 적대 세력들은 자본가는 사악한 존재이며,경영권은 사유재산이 아니며,기업은 사회의 공동자산이라는 식의 공허한 이념을 선전하는데 언제나 큰 성공을 거둬왔다.

또 재벌 2세 혹은 3세가 결코 '정상적으로는' 기업을 상속받을 수 없도록 법망을 조여왔다.

그 결과가 필연적으로 불거진 것이 바로 불법 혹은 편법 상속 문제다.

상속 재산에 세금을 내라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 결과는 경영권의 최장 존속 기간을 30여년으로 한정함으로써 기업소유권을 사회화하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기업 하나를 키워내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

기업 하나를 국제적 규모로 키워내는 데는 최소한 3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사업 초기에는 100%의 창업자 지분율도 가능하겠지만 기업을 키우고 자본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지분율은 30% 이하로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고 증시에 상장하게 되면 다시 10% 대로 떨어진다.

그것은 삼성도 마찬가지이고 현대자동차도 다를 것이 없다.

기업을 키우고 자본력을 키울수록,다시 말해 성공한 기업일수록 대주주 지분은 낮아지고 따라서 경영권 피습 가능성은 높아진다.

여기서 상속이 시도된다면 더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다.

50% 세율 하에서 상속 주주의 경영권 유지는 불가능하다.

바로 이 때문에 편법을 감행해서라도 경영권 유지를 도모하게 된다.

창업 30여년이 지나면 혹은 상속자는 소유 경영에서 손을 떼라고 하면 그만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지금의 법적 조건이 바로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당연하지만 무소유의 고매한 철학으로 단련된 극소수 인물을 제외하고는 기업을 키우지 않게 된다.

키우면 빼앗기는데 기업을 키워야 할 이유가 없다.

기업을 키울수록 반자본주의 세력,아니면 금융 투기꾼들에게 자신의 기업을 고스란히 기부 체납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가 왜 기업을 키울 것인가.

경영권 상속에 대해서는 상속받은 주식을 매각하는 시점까지 납세를 이연해주는(면세가 아닌) 등의 방법으로 타협안을 모색하는 미국의 선례도 고려해봄 직하다.

언제든 한 번만 세금을 내게 하면 족하지 않은가 말이다.

경영권 수명을 30여년으로 한정해 놓고 그리고 경영권 상속을 미리부터 차단해 놓은 조건 하에서 대기업이 솟아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