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아주,몹시'를 '졸라'라고 하는데 이런 것은 일종의 언어 유행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쓰지 못하게 할 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때는 쓰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우리에게 '멋울림'이란 다듬은 말이 있어도 '컬러링'을 계속 쓰는 것은 이 말이 먼저 익었기 때문입니다. 국어 순화를 할 때도 뒷북치면 먹혀들지 않습니다."

"'골다공증'을 '뼈엉성증'으로,'갑상선'을 '목밑샘'으로 바꿔봐야 현실적으로 잘 쓰이질 않습니다. 전문용어를 순화할 때는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봄 국립국어원 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의 한 장면이다. 주제는 '국어 순화'. 광복 이후 우리 언어정책의 한 축을 차지해온 '말 다듬기'의 실태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고 방향을 찾기 위한 자리였다. 전통적으로 '위에서 아래로(top-down)'의 방식에 의해 이뤄져온 말 다듬기는 그 노력에 비해 성과가 미약한 분야다.

상품명이 일반명사화한 경우는 다듬은 말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순화어가 제시되더라도 언중 사이에 뿌리내리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것들 외에도 포클레인을 비롯해 아스피린,제록스,바리캉,바바리코트,지퍼,샤프펜슬,롤러블레이드 등이 그런 사례다.

포클레인은 프랑스의 포클랭(Poclain)사에서 만든 기계삽차의 상표명이 일반명사화한 것이다. 유압을 이용해 삽 기능을 하는 장치로 땅을 깎거나 흙을 퍼내는 중장비를 가리킨다. 이 말은 '삽차'로 순화됐지만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굴삭기'나 '굴착기'가 비교적 낯익은 말일 것이다.

'굴삭기(掘削機)'란 '땅을 파거나 깎는 데 쓰이는 중장비'로서,특히 '포클레인'을 가리켜 부를 때 쓰인다. '굴삭'이나 '굴착(掘鑿)'이나 '땅이나 흙을 기계로 파고 깎는 것'을 뜻하니 같은 말이다. 다만 '굴삭'은 일본에서 한자 착(鑿)이 복잡하고 어려운 글자라 삭(削)을 대용어로 쓴 데서 생긴 말이라는 차이가 있다.

일본에서 온 말이다 보니 다듬기의 대상이 됐는데 대체어로 제시된 게 '굴착'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말 역시 어려운 한자어이다 보니 다시 '땅파기'란 좀더 쉬운 순화어가 나왔다. 하지만 이 또한 실생활에선 잘 쓰이지 않는다.

포클레인은 엄밀히 말하면 굴삭기 또는 굴착기와는 다르다. 굴삭기는 포클레인의 개념을 포함해 두루 쓰이는 단어다. 굴착기는 자의(字意)로만 보면 꽤 넓은 의미를 갖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땅을 뚫는 기계로 많이 알려져 있다. 따라서 언중에게는 땅을 '파내는' 삽차는 포클레인 또는 굴삭기,땅을 '뚫는' 기계장치는 굴착기로 인식돼 있는 것 같다.

포클레인에서 굴삭기,굴착기를 거쳐 삽차,땅파기에 이르는 과정에는 국어순화 작업의 당위성과 현실적 어려움이 담겨 있다. 포클레인처럼 일반명사화한 말을 뒤늦게 굳이 다듬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