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4월17일자 A1,5면

대기업 투자의 걸림돌로 지적돼 온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가 이르면 내년,늦어도 2008년까지는 폐지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지난 16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오전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등 관계 부처 장관들과 예정에 없던 회의를 갖고 출총제 존폐에 관해 논의했다.

노 대통령과 각부 장관들은 이 자리에서 출총제를 없앤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했으나 시기는 재경부가 내년을 주장한 반면,공정위는 2008년이 바람직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출총제 적용 대상 그룹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GS 한화 두산 금호아시아나 동부 현대 CJ 대림 하이트맥주 등 14개다.

안재석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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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투자 저해 요인으로 지목돼 온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총제의 폐지 시기를 각각 2007년과 2008년으로 제시했다는 소식이다.

자산 6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의 계열사가 다른 기업들에 출자할 수 있는 금액을 순자산의 25% 이내로 제한하는 출총제는 경제력 집중 억제와 소액주주의 권익 침해 방지 차원에서 1987년 도입됐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서 '기업 사냥'에 나선 외국 기업들에는 출총제가 적용되지 않는 데 따른 역차별 논란이 제기되자 1998년 폐지됐으나 재벌개혁 명분을 앞세워 2001년 다시 시행됐다.

하지만 그 후에도 출총제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대기업 등 재계는 국내 투자 금지로 인해 돈을 쌓아 놓고도 투자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 등은 대기업들이 순환출자를 통해 무분별하게 기업을 확장하고 얼마되지 않는 지분으로 총수 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등 폐해를 막기 위해선 출총제가 필요하다고 맞서왔다.

◆출총제는 순환출자 통한 기업 확장 막기 위한 것

국내 기업집단들은 무분별한 기업 확장과 기업주를 위한 지배력 집중의 수단으로 순환출자를 활용해온 게 사실이다.

순환출자는 여러 기업이 자본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실제보다 자본을 부풀리기 때문에 시장을 속이는 것임은 물론 소수 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부채로 기업을 확장함으로써 기업의 재무 구조를 악화시켰을 뿐 아니라 중소기업의 진출을 막음으로써 중소기업 육성에도 걸림돌이 돼왔다.

정부는 기업집단이 순환출자를 통해 문어발식으로 계열기업을 늘리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기업투자를 내실화하기 위해 출총제를 도입했다.

당초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의 다른 회사에 대한 출자총액을 순자산의 40%로 제한했다가 1994년 출자총액한도를 순자산의 25%로 인하했다.

그러다가 1997년말 외환위기 후 외국인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전면 허용됨에 따라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1998년 2월 출총제를 폐지했다.

그 결과 대규모 기업집단의 계열사 간 출자가 증가하고 내부 지분율이 크게 높아지면서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수많은 계열사를 지배하는가 하면 일부 계열사의 부실로 인해 전체 기업집단이 부실화되는 등 폐해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2001년 4월1일 출총제가 다시 시행에 들어갔는데,순자산의 25%를 초과해 다른 회사의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되 한도 초과 출자는 2002년 3월 말까지 해소하도록 했다.

◆역차별로 국내 기업들 적대적 M&A에 노출돼

대기업 등 재계는 진작부터 출총제 폐지를 주장해 왔다.

출총제에 따른 국내투자 규제로 인해 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못하게 되니 국내 경기가 활성화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뿐만 아니라 자산총액이 6조원을 넘는 대기업에만 적용됨에 따라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은 외국인의 적대적 M&A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역차별로 인해 외환위기 후 국내 우량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국내 주요 기업에 대한 외국인의 지분이 크게 늘어나면서 배당으로 인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돈이 엄청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우리 기업들도 세계로 뻗어나가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상황을 감안하면 정부의 대응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걱정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며 오히려 기업의 신규 투자 위축을 걱정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기업을 밀어줘도 시원찮을 판국에 기업의 발목을 잡고 결과적으로 역차별을 가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이다.

◆순환출자 규제 등 대안 마련이 최대의 과제

물론 출총제의 폐지문제를 놓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민단체와 학계 일부에서는 출총제 폐지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너무도 달라졌다.

문어발식 기업 확장과 대주주의 독단 경영은 이제 시장에서 통하기가 어려운 형편이고 보면 시대에 맞지 않는 출총제와의 결별은 빠를수록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출총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집단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질 경우 이의 설립이나 전환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순환출자를 직접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증권집단소송제를 비롯 사외이사 등 경영감시장치가 강화되고 있을 뿐 아니라 민간 자율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정부 당국은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의 기능을 최대화하는 대기업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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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

◆출자총액제한제도

회사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여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로,대기업그룹이 기존 회사의 자금으로 또 다른 회사를 손쉽게 설립하거나 타사를 인수함으로써 기존 회사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문어발식으로 기업을 확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

공정거래법 10조에는 자산 규모 6조원 이상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는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게 규정돼 있다.

◆상호출자제한제도

상호출자란 서로 독립된 법인끼리 자본을 교환형식으로 출자하는 것을 말하며,대기업그룹 계열사 간 결속력을 강화하거나 자기자본을 부풀려 은행융자나 회사채 발행한도 확대 등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이뤄진다.

상법에서는 상호출자를 통한 회사 자산의 가공적 증대를 막기 위해 모자관계 회사 간(출자지분 50% 이상)에 상호주식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

적대적 M&A는 인수기업이 인수대상기업 경영진의 동의 없이 공개매수,주식매집,위임장 경쟁 등을 통해 대상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차지하는 것으로 양측 간 합의로 이뤄지는 우호적 M&A와 반대되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