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을 수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 중 하나인 자본에 관해 영국의 많은 기업이 심각한 부족을 호소했었다는 점은 다소 역설적이다.

농업 중심의 중세 봉건제에서 공업 중심의 자본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기업들은 자본 부족에 시달렸다.

물론 이는 공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본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상대적인 부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혁명 기간 전체로 볼 때 영국의 자본시장에는 돈이 비교적 풍부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왜 기업들은 자본 부족을 호소했던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당시 자본 공급의 원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기업들이 쓸 수 있는 돈 가운데 가장 쉽게 조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자금이다.

이 가운데서도 기업 운영에 따른 수익금을 재투자하는 방식이 가장 널리 활용됐다.

다음으로 얻어 쓰기가 쉬웠던 돈은 친척,혹은 친구 등 아는 사람으로부터 빌리는 것이다.

이른바 사적 자본시장이다.

그러나 이들 자금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은행 등 공적자본시장에서 돈을 빌려 쓰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은행들은 대출에 관한 한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물론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영국의 금융기관이 대외적으로 커다란 신뢰를 받고 있는 바탕이지만,산업혁명 당시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공적자본시장의 자본을 활용하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산업혁명 당시 영국의 기업들은 자기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클 수밖에 없었다.

이윤이 발생하면 이를 배당금으로 지급하기 보다는 대부분 재투자함으로써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이윤의 재투자(plow-back)라는 형태의 자본조달 방식이 산업혁명 초기 일반화되었던 것을 경제학적 논리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저 단순하게 돈을 빌려 쓸데가 없으니 자기 돈을 다시 투자할 수밖에 없었지 않나 생각하면 그만일 수도 있으나,정보경제학의 발달과 함께 정보불균형의 논리로 이를 해명하려는 노력들이 등장했다.

메이샤는 산업혁명기와 같이 경제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대부자들이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투자자금으로부터 얻는 수익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고 보았다.

새로 생겨난 어떤 기업이 있는 경우를 예를 들어 보자.이 기업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사적자본시장,그 바깥 쪽으로 공적자본시장이 동심원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해 보면 기업으로부터 반경이 커질수록 기업에 대한 정보는 줄어든다.

정보가 부족해서 불확실한 곳에 투자하려면 당연히 더 높은 이자를 요구하게 되고,따라서 기업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질수록 기업은 더 높은 이자로 자금을 빌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즉 기업이 자기 자금을 쓰는 경우와 친척 등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쓰는 사적자본 시장과 은행 등 공적 자본시장으로부터 자금을 빌려쓰는 경우의 이자가 달랐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을 먼저 쓰고 그 다음에 사적자본 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해서 쓰고,그 다음으로 공적자본시장을 찾게 된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의 이윤을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와 와이스는 비슷한 논리지만 좀 다르게 설명한다.

자본시장에서 자본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 이자율이 높아지게 되고,그렇게 되면 역선택의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자율이 높아지면 우량기업의 경우 돈을 빌리려 하지 않는 반면,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의 경우에는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대출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은행의 입장에서는 우량기업이 아닌 기업들과 거래를 할 수밖에 없는 역선택의 상황이 되는데,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은행은 당연히 대출을 제한하고 기업은 자기지본을 먼저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코스닥 기업들에 대해 사람들이 투자를 꺼려 괜찮은 기업들조차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생각해보면 이들 기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노택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