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파스,포스트잇,호치키스,스티로폼,포클레인,지퍼,바바리,롤러 블레이드,바리캉,샤프펜슬.'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한 말이라는 것이다.

외래어(정확히는 외국어)가 지나치게 많은 글은 읽기에 자연스럽지 않다.

문제는 '지나친 외래어 사용'의 기준을 어디까지로 잡을 것이냐 하는 것인데,이때 흔히 제시되는 게 우리말 대체어가 있느냐의 여부이다.

'크레파스'는 일본에서 만든,막대기 모양의 화구(畵具)를 나타내는 상표명이다.

프랑스 말 크레용(crayon;그림을 그리는 막대 모양의 채색 재료)에 파스텔(pastel)을 결합시켜 만든 말이다.

일본말로는 [クレパス,구레파스]인데,이를 그대로 읽어 나이 든 사람들 중에는 지금도 [구레빠쓰]라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우리가 미술용품을 말할 때 본래 용어인 크레용을 두고 굳이 일본에서 만든 크레파스란 상표명을 쓸 이유는 없을 것이다.

'포스트잇(Post-it)'은 미국의 3M사가 만든 상품명이다.

'한쪽 끝의 뒷면에 접착제가 붙어 있어 종이나 벽에 쉽게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종이쪽'을 가리킨다.

오래도록 마땅한 대체어가 없어 그냥 포스트잇으로 불리던 이 말은 2004년 11월 국립국어원에서 '붙임쪽지'란 말로 바꿨다.

아직 설익은 말이지만 단순히 '포스트잇'이라고 하기보다 '붙임쪽지'라고 하면 의미가 훨씬 분명해진다.

'여러 장의 종이를 사이에 끼우고 누르면 'ㄷ'자 모양의 가는 꺾쇠가 나오면서 철하게 만들어진 기구'를 '호치키스(Hotchkiss)'라고 한다.

이런 기구를 나타내는 말은 '스테이플러(stapler)'이지만 '호치키스'라는 상표명이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원래의 일반용어를 밀어냈다.

단열재나 포장재료 등으로 많이 이용되는 '스티로폼(styrofoam)'은 속에 작은 기포를 무수히 지닌 가벼운 합성수지이다.

이 역시 원래 상표명인데 이 제품이 대중적으로 쓰이면서 보통명사화했다.

화학용어로서의 정확한 말은 '발포 스티렌 수지'이지만 일상용어로는 쓰이지 않는다.

'스티로폼'으로 외래어 표기가 정착되기 전에는 '스티로폴' 또는 '스치로폴' 등으로 쓰기도 했으나 모두 잘못 쓰던 것이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며 다른 것과의 관계를 구별짓는 과정이다.

그렇게 탄생한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한다는 것은 그 말이 '상징'의 힘을 갖췄다는 것을 뜻한다.

수사학적으로는 일종의 전의(轉義)를 통한 어휘화이다.

이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아 부족한 어휘의 공백을 메워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런 점에서 위에 나온 말들을 모두 굳이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경우라면 가능한 한 대체어를 쓰는 게 바람직하다.

또 태생적으로 적절치 않은 말도 구별해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