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776년 영국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했다.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1773년의 보스턴 차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영국 정부가 당시 식민지였던 미국의 차(茶)밀무역을 금지하고,차무역의 독점권을 동인도회사에 부여한 데 대해 식민지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발생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영국의 식민지에 대한 중상주의적 통제가 있었다.

당시 영국은 중상주의 정책에 따라 식민지 미국의 대외 무역에 직접적이고도 엄격한 통제를 가하고 있었다.

이른바 항해법(Navigation Acts)으로 알려진 일련의 법을 통해 영국은 식민지의 대외무역에 반드시 영국선적의 선박을 이용하고,모든 수출입 물품은 반드시 영국을 거쳐서 이동하도록 규정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프랑스로 수출하는 물품은 일단 영국으로 보낸 뒤 다시 프랑스로 수출해야 했고,프랑스로부터 수입하는 상품 역시 일단 영국으로 갔다가 미국으로 수입되도록 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수출업자나 수입업자는 불필요한 수송비용과 관세,보험료 등을 부담해야 했다.

이들이 영국의 중상주의적 정책에 반발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 항해법으로 인해 식민지 미국의 주민들이 부담했던 경제적 비용은 얼마나 되었을까.

토머스라는 경제사학자는 생산자잉여와 소비자잉여의 변화를 가지고 미국이 항해법에 의해 입었던 경제적 피해 규모를 추정해 보았다.

위 그림은 생산자잉여의 감소분을 표시하고 있다.

먼저 미국의 생산(수출)업자는 S로 표시된 공급곡선에 따라 유럽의 시장에 상품을 공급한다.

여기서 D는 유럽대륙의 수요를 의미한다.

만일 항해법에 의한 규제가 없었다면 수송비용과 관세 등을 포함하더라도 공급곡선은 S"로 이동할 텐데,항해법으로 인해 추가비용이 들어감으로써 공급곡선이 S'로 이동한 상황을 이 그래프는 보여주고 있다.

항해법에 의한 규제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 생산(수출)업자들의 생산자 잉여는 P"로 표시된 수평선 아래쪽과 공급곡선 위쪽으로 구성된 삼각형이 된다.

그런데 항해법이 없었을 경우의 생산자잉여는 P'로 표시된 직선과 공급곡선 S의 위쪽 삼각형이 될 것이다.

따라서 빗금친 부문만큼의 생산자 잉여는 항해법에 의한 규제가 없었을 경우 미국의 생산업자들이 추가로 누렸을 생산자잉여가 된다.

다시 말해 항해법이 강제됨으로써 미국의 생산자들은 빗금친 사다리꼴 모양만큼의 생산자잉여를 손해 보았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생산업자들은 Q만큼을 생산해서 균형가격인 P에 수송비용 등(S와 S"의 수직거리)을 합한 훨씬 높은 가격에 유럽에 팔면서도 오히려 생산자잉여는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같은 그래프를 가지고 D를 미국의 소비자,S를 유럽대륙의 상품공급자로 바꾸게 되면 미국 입장에서 항해법의 규제에 따라 수입품의 가격이 비싸지면서 소비자잉여가 감소하는 것을 표시할 수 있다.(스스로 그래프를 그려서 표시해 보자)

그러나 토머스는 영국이 강제한 항해법에 따라 미국의 부담이 어떻게 증가했는가를 이론적으로 규명했지만,실제 데이터를 이용해 이를 계산해 보니 그 크기가 매우 작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계산 과정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어 실제 부담이 어느 정도였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정밀한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하겠다.

다만 역사의 해석에 이처럼 분명한 경제 이론적 설명이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은 되새겨 볼 만하다 하겠다.

노택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