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암호는 야간에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는 유일한 소통 수단이다.

전라도 출신 신병이 처음으로 야간 순찰을 나섰다.

그날 암호는 '자물통-열쇠'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조심스레 나가던 신병이 보초병과 맞닥뜨렸다.

보초-"손들어! 뒤로 돌아 !자물통!" 당황한 신병은 일순 암호를 잊었으나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쇳대."

그러자 적으로 오인한 보초병이 총을 쐈다.

신병은 억울하게 죽어가면서 한마디 말을 남겼다.

"쇳대도 긴디…."

사투리와 관련된,시중에 떠도는 우스개 중의 하나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겐 여전히 '쇳대'가 익숙하겠지만 요즘 학생들 사이에선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이 말은 강원 경기 경상 전라 충청 함경 지방에서 쓰이는 사투리다.

표준어는 '열쇠'다.

하지만 방언 치곤 그 쓰임새가 거의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이처럼 '현대 서울말'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많은 방언들을 표준어와 구별해온 것은 우리 언어 정책의 실책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는 그동안 방언에 대해 매우 인색한 태도를 보여온 게 사실이다.

이는 학교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시행 중인 7차 교육과정 개편 전까지도 '표준어는 맞는 말,방언은 틀린 말' 또는 '표준어는 우월하고 세련된 말,방언은 저급하고 부정확한 말'이란 식으로 가르쳐 왔다.

이에 비해 북한에선 문화어(남한의 표준어에 해당하는 말)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방언을 수용했다.

가령 '아이스크림'을 다듬은 말 '얼음보숭이'는 방언을 이용한 외래어 순화작업의 한 사례다.

평안·황해도 방언인 '보숭이'는 우리 표준어 '고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은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뿌리내리지 못해 결국 1992년의 '조선말대사전'에서 폐기되고 다시 '아이스크림'이 문화어로 복귀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아지'는 '(나무의)가지'의 강원 방언인데 남에서는 '가지'만 표준어지만 북에서는 '아지'와 '가지'를 함께 문화어로 쓴다.

이런 복수문화어에는 '더부치/호주머니,잎새/잎사귀,수리개(소리개)/솔개,가마치/눌은밥,엄지/어이,뜨락/뜰,나래/날개,내음/냄새,또아리/똬리' 등 수없이 많다(사선 뒤가 우리 표준어로 남쪽에서는 하나만 인정한다).우리가 입말에서 흔히 쓰는 '~라구''~하구요'도 중부방언의 한 형태인데 표준어로는 '~라고''~하고요'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정작 북한에서는 두 가지 형태를 모두 받아들였다.

이미 널리 퍼져 있는 말은 방언 여부를 떠나 문화어로 삼은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도 '나래'니 '뜨락'이니 하는 일부 말들을 함께 쓸 수 있도록 허용하긴 했지만 그동안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방언의 세력이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공식적인 글에서는 표준어를 쓰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방언은 저급하고 틀린 말이란 의미는 아니다.

방언도 소중히 가꾸고 지켜나가야 할 우리 문화유산이다.

방언에는 삶의 향기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