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 구축효과가 존재했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결국 '영국의 자본시장이 얼마나 발달해 있었는가'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윌리엄슨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할 만한 충분히 발달한 자본시장이 존재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자본시장이 양적인 규모에서 충분히 발달했다는 것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통합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본시장의 통합이라는 말이 갖는 경제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우리가 일반적으로 생산요소로서의 자본을 공급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금융상품을 구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는 은행에 저축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가계나 기업 정부와 같은 경제 주체가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은 일정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을 가지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은행에 저축을 하는 경우에도 저축의 종류가 다양하게 존재할 뿐 아니라,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살 수도 있고,민간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를 살 수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금융상품과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금리 또한 다양하다.

돈을 생산에 투자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자금을 생산에 투자하는 경우에도 제조업에 투자할 수도 있고,농업에 투자할 수도 있다.

어디에 투자하는가에 따라서 얻을 수 있는 수익 또한 달라지게 마련이다.

돈을 투자해서(금융상품이든,여러 분야의 생산에 투자하든)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 대상의 위험성에 차이가 있든지,아니면 투자 기간에 차이가 있든지 하는 것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구불예금(우리가 일반적으로 은행에 개설하는 통장)의 경우 예금자가 언제 찾으러 올지 모르기 때문에 은행이 충분한 운용수익을 얻기가 어렵고 따라서 이자가 낮다.

반면 일정기간 예치해 두어야 하는 저축성예금은 이자가 더 높다.

위험성이 높은 회사채(위험성은 신용평가기관이 평가한다)는 그렇지 않은 회사채에 비해 수익률이 더 높고,같은 논리로 위험성이 낮은 국채는 회사채에 비해 수익률이 낮다.

이러한 이유를 다 포함해서 일정한 자금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자본수익률이라고 하고,단위 자본으로부터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을 자본의 한계수익률이라고 한다(한계의 개념은 미시경제학의 기본 개념이므로 교과서를 찾아보자).

만일 한 상품,혹은 한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자본의 한계수익률이 다른 경우보다 훨씬 높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그렇다면 자본의 한계수익률이 낮은 분야에 투자된 돈을 한계수익률이 높은 분야로 옮기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돈은 한계수익률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그 결과 한계수익률이 낮았던 곳에서는 돈이 줄어들게 되므로 돈 값(예를 들어 이자)이 올라 한계수익률은 높아지고,높았던 곳에서는 수익률이 낮아지게 된다.

결국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경제사회적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면 모든 분야에서 자본의 한계수익률은 같아져야 한다.

이런 경우를 자본시장이 잘 통합되어 있다고 한다.

만일 어떤 이유에서든 자본의 한계수익률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고 이것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자본시장이 제대로 통합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당시 영국에서 자본시장이 잘 통합되어 있었는가의 문제는 구축효과의 존재 여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자본시장이 잘 통합되어 있다면 정부의 국채 발행으로 국채시장에서의 수익률이 높아지고 따라서 다른 시장,예를 들어 민간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시장으로부터 자금이 국채시장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자본시장이 잘 통합되어 있지 않았다면 국채 발행에도 불구하고 민간의 자금이 국채시장으로 이동했다고 보기 어렵고 따라서 구축효과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이에 대해 알아보자.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