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김영봉 중앙대 교수ㆍ경제학

▶ 2006년 2월20일자 한국경제신문 A39면

일부 한글 예찬론자들은 한글이 어떤 언어라도 소리 나는 대로 옮겨 적을 수 있는 표음(表音) 문자라고 주장한다.

한글의 과학적인 조합 덕분에 이 점은 영어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적어도 로마자를 옮겨 표기함에 있어서 한글은 낙제 점수다.

에프[f] 발음을 표기하는 글자가 없어서 에프가 들어가는 모든 영어 어휘를 엉뚱한 말로 만들기 때문이다.

요새 청소년들은 걸핏하면 '필'이 꽂히고 '팬시' 숍을 즐겨 찾는다는데,필자는 젊은이들이 곧잘 약[pill]에 취하고 여성용품[pansy] 가게에 잘 간다는 뜻으로 알았다.

그러나 실제 의미는 감(感·feel)이 꽂히고 환상적 소품[fancy]을 파는 가게란다.

대체 누가 이런 수수께끼를 알아채겠는가.

한글에서는 모든 에프를 피[p]로 표기한다.

양식기 포크[fork]를 돼지고기 포크[pork]로,열광하는 팬[fan]을 요리기구 팬[pan]으로 쓴다.

이런 억지 표기 사례가 너무 많아 다른 표음의 장점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한글은 국제소통 언어로서나 국내 소통의 말로나 절름발이 신세를 면할 수 없다.

이 결함 때문에 글로벌 시대 우리 말의 발전이나 아동의 영어 교육이나 원천적으로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한글에 에프를 표기하는 자음 하나만 있다면 이 모든 문제는 기적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그 많은 한글학자 국문학자 문필가들께서는 아직 아무 말이 없다. 우리 한글 예찬자들은 한글이 '현존하는 문자 중 유일하게 창제(創製)된 문자'임을 자랑한다.

이런 훈민정음 창제의 뜻은 그 후예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맞게 문자를 발전시켜 한글의 우수성을 이어가라는 것 아닌가.

그러나 해방 이후 지난 60년간 어떤 적응 노력이 있었는가.

만약 세종대왕께서 오늘날 살아 계신다면 지구촌으로 뻗는 나라 글과 백성을 위해 에프 발음의 글자 하나를 반드시 만들어 주셨을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한글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글임은 우리 국민 모두가 인정한다.

쉬운 글이 있는 덕분에 우리나라에는 문맹자가 전혀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보다 국민의 지적 능력과 의지력이 한결 높아졌을 것이고 그동안의 비약적인 경제·사회 발전도 가능했을 것이다.

세종대왕께서 500년도 더 전에 이렇게 편리하고 삶에 보탬이 되는 글을 만들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세계적인 자랑거리이다.

정보산업 발달과 지구촌 네트워킹[networking] 통합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오늘날 한글의 미래 국제적 경쟁력도 더욱 커질 것이라고 한다.

한글인터넷주소추진연합회 신승일 박사의 말을 들어 보자.

"옥스퍼드 언어학대학에서 현존하는 언어를 과학성 합리성 독창성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한글은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컴퓨터 자판과 휴대폰에서의 한글 문자입력 속도는 일본어나 한자는 물론 로마자보다도 빠르다.

또한 일자일음 일음일자 원칙의 한글은 타 언어보다 음성 인식률이 높아 다가오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가전 통신 컴퓨터 로봇의 명령 언어로도 각광받을 것이다.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정보 검색-전송 속도가 개인과 국가 경쟁력에 직결되므로 이런 한글을 쓰는 우리나라는 더욱 강하고 경쟁력 있는 IT 강국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과연 한글은 무궁무진하게 뻗어나갈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팔등신 미인이라도 절름발이는 미스 월드가 될 수 없다.

'ㅍ'에 모자를 씌우든 새 글자가 됐든 '이제' 에프를 발음할 수 있는 자음 하나를 만들자고 한글 문외한이 감히 제안한다.


[ 생각하기 + ]

# 한글로 표기할수 없는 발음은 어떻게 표기해야 하나

# 영어 공용화론에 대해 토론해보자

#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인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드라마나 TV 광고,일상 대화 등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급속하게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고향에 대한 향수와 전통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김영봉 교수의 '다산 칼럼'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며 한글을 국제화하는 데 게으른 우리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시대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이미 존재하고 있는 자음과 모음만 고수하려는 태도를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는 것이다.

오늘은 전통주의와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자.서구 사회에서 전통주의(傳統主義·traditionalism)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혁명 당시 왕당군에 가담한 보날드는 루소의 사회계약설을 배격하고 출판의 자유,국민 투표 등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그는 자신의 저작인 '정치적 ·종교적 권력론'에서 '군주야말로 신이 제정한 자연법의 유일한 집행자이며 국가의 최고 주권'이라고 주장했다.

소설가인 메스트르는 프랑스 혁명이 못마땅해 러시아로 망명을 떠나 장군이 됐다.

메스트르는 교회와 교황의 절대권을 주장했다.

전통에 대한 그리움은 한문 교과서에서도 배울 수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은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비유한 것으로 중국의 예기(禮記) 단궁상편(檀弓上篇)에 나온 말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근본을 잊지 않는 마음으로 전통주의와 관련이 있다.

반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옛 것을 알면서 새 것도 안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공자가 한 말이다.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는 구절에서 땄다.

옛 것과 새 것,전통과 변화를 두루 알아야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은 변화를 강조한 말이다.

중국 탕왕의 반명(盤銘)에 나온 이 말은 '매일매일 발전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원래 문장은 일신 일일신 우일신(日新 日日新 又日新)이다.

한글은 우리가 자부심을 충분히 느낄 만한 세계 최고 수준의 창작품이다.

그러나 세계 1등이라고 해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전통주의적 교조주의적 접근은 우리 글을 퇴행시킬 수 있다.

우리와 형제국(?)이라고 주장하는 터키는 1000년 이상 아랍어로 표기해 오다 무스타파 케말(케말 파샤) 정부가 들어선 뒤 1928년 언어개혁법을 제정,영어 알파벳(라틴어)을 채용해 터키 말을 표기하고 있다.

일본은 한자의 초서체를 기초로 해서 만든 표음 문자인 히라가나(平假名) 이외에 외래어 등을 차용할 때 주로 쓰는 가타카나(片假名)를 만들어 문자 영역을 확대해 왔다.

우리 글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자음과 모음을 만드는 것은 한글을 훼손하는 것일까.

세종 당시 쓰던 28자만 모두 복원하더라도 지금의 24자보다 많은 표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