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김중수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2006년 2월 16일자 한국경제신문 A39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우리 국가체제의 양대 축이다. 이 둘은 상호의존적이며 홀로 운영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 이 두 개념 중 하나라도 소홀히 한 나라는 세계경제의 무대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해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각기 독립적인 주체가 되어 경쟁적으로 행동하는 곳이 시장이라면,모든 국민이 동등한 투표권을 갖고 주인으로 행동하는 것이 민주주의 체제다. 민주주의는 각 구성원이 법과 규범을 준수하는 전제 아래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조화롭게 운영될 수 있다. 시장경제도 마찬가지다. 합리적 행동은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개인의 자유와 의사결정이 최상의 가치로 추구되는 체제다.

그런데 개인의 합리적 선택과는 괴리된 현상을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떼지어 행동(herd behavior)'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무리를 이뤄 행동하면 한 쪽으로 쏠리는 결과가 초래되기에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경제의 안정이 무너지고 불확실성이 증가하게 된다.

경제주체의 이러한 행동은 1997년 말 아시아 각 국 경제위기의 주요요인 중 하나로 분석되고 있으며,특히 우리나라에서 자주 관측되는 현상이다. 쉽게 끓고 쉽게 식어 냄비현상이라 불리는 경제의 과열과 급랭의 주요 요인임은 말할 나위 없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거품을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경제보다 정치적 동기에서 유발되기도 하는데,이 경우 민주적 절차에 따른 개개인의 의견수렴 과정을 의미 없게 만들기도 한다.

왜 떼지어 행동하게 되는가? 이는 특정 목적을 위한 집단행동,또는 유행따라 너도 나도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누가 조직적으로 관리하고 조종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특성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할 경우 개인의 입장에서 합리적 선택의 여지는 줄어들기에 오히려 떼지어 행동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합리적 행태일 수 있다.

예를 들어,거품 상태에서는 거품이 꺼지는 순간까지 가격이 오르고 이윤이 창출되기에 개인으로서는 남들이 하는 대로 시장에 남아 있게끔 되는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거품이 사라져버릴 경우를 고려하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다. 따라서 개별 주체의 행동을 나무라기보다는 이러한 행동이 촉발되지 않도록 여건을 정비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선결요건인 것이다.

선진경제일수록 합리적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떼지어 행동하는 현상이 드물게 나타난다. 왜 그럴까?

첫째,경제활동이 투명하고 모든 경제주체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민간 부문,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간에 정보의 비대칭성이 적다. 정부정책이 민간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 개인의 입장에서는 위험부담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도 독자적 행동을 취하기 어렵다.

둘째,경제문제의 정치화가 최소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문제 해결에는 이성에 근거한 합리적 결정이 필수적인데 정치적 결정은 감성에 좌우될 여지가 있다. 개인의 합리성이 전제되면 인기영합적인 정책이 선택될 가능성은 낮아진다.

셋째,경제제도의 유연성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직적인 제도에서는 개인의 선택폭이 제한적이므로 상대적으로 남과 같이 행동하는 결과가 만연하게 된다.

부동산시장의 안정,스크린 쿼터 축소,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 중요하고 민감한 정책과제들이 추진되고 있다. 제 아무리 옳은 방향이라고 해도 정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며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돼야 한다. 떼지어 하는 행동이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와 노력이 경주되기를 기대한다.


[ 생각하기 + ]

# 인간도 동물적인 속성 사회전체 휩쓸리면 재앙

herd는 소떼 돼지떼 양떼 등 가축의 무리를 뜻하는 말이다. 맹수가 한쪽 방향에서 나타나면 동물들은 다른 쪽으로 한꺼번에 몰려간다. 이 같은 군집행동을 herd behavior(떼지어 행동)라고 표현한다. 사회학에서는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인간의 행태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떼지어 행동하는 것은 인간,좀더 근본적으로는 동물의 본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무리를 짓는 것이 적의 침입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데 유리하고,분업이나 협업 등의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강남은 '서울의 강남'이 아니다. 중국 양쯔강의 남쪽을 뜻하는 말로 매우 멀고 풍습이 낯선 곳을 말한다. 친구가 간다고 하니까 아무 생각없이 나도 따라간다는 의미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peer pressure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동료 집단으로부터 받는 사회적 압력을 뜻하는 말이다. 흑인 학생은 주변의 다른 흑인 학생들이 가하는 peer pressure 때문에 백인들이 즐겨입는 스타일의 바지를 입지 못한다. 이처럼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싶어도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 '튀는 행동'을 자제하도록 만드는 분위기를 peer pressure라고 말한다.

peer pressure가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관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일본에서는 이지메(따돌림)로 개인을 '왕따'시키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지메는 두 사람 이상이 집단을 이뤄 특정인을 소외시키고 음해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같은 현상이 특정한 집단에서가 아니라 사회공동체 전체(국가)차원에서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로 흘러가게 된다. 유대인을 왕따시키는 차원을 넘어 집단살해(홀로코스트)를 하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전체주의는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동양과 서양,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간간이 나타나곤 한다.

떼거리 행동은 개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수많은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개개인의 개성과 합리적인 판단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을 소외시키고,더 나아가 떼거리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떼거리 행동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철학적 비판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지은 '노예의 길',칼 포퍼가 쓴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셀 푸코가 저술한 '광기의 역사',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도 생글생글 독자들이 도전해볼 만한 좋은 책이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