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아트 창시 백남준씨 타계 ‥ 인생을 한바탕 예술로 놀다 가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지난달 29일 타계한 백남준은 우리의 모든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킨 '혁신적 예술운동가'다.


텔레비전과 레이저·인공위성 등 무엇이든지 그에겐 예술의 소재였다.


거대한 지구촌을 자신의 아틀리에(작업실)로 삼았다.


세계는 그를 "문화역사를 새로 쓴 예술가"로 격찬한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 창시자로 알려졌지만 평생 기행과 기존 예술에 대한 파괴,재창조를 거듭한 혁신가였다.


그의 예술 세계는 한 편의 드라마다. 한 인간으로서 삶의 역정도 그랬고,자유를 향한 의지와 창조정신이 더욱 그랬다.


◆"예술은 사기다"


고국을 떠난 지 32년 만인 1984년 한국에 처음 도착한 그가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 고등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내가 30년 가까이 해외에서 갖가지 해프닝을 벌였을 때 대중은 미친 짓이라고 웃거나,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예술이 무엇인가를 관념적으로 정의하려 드는 사람들에게는 예술이 흡사 사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예술을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에게 예술은 재미있고 유익하다.


일부 몇몇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예술은 가치가 없다.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은 예술의 편협성을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이었다.


백씨는 아방가르드에 눈뜸으로써 많은 작가와 교류했고 그 와중에 비디오 아트를 일구어 냈다.


그는 확실히 다른 작가들과 다른 면을 지녔다.


끼가 너무 넘쳐서인지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고 관람석에 내려와 넥타이를 자르는 등 기존의 관념을 철저하게 때려부셨다.


◆치열한 삶과 예술세계


1984년 전 세계에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전만 해도 백남준은 국내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행을 일삼는 전위예술가 정도로 막연히 알려졌을 뿐이다.


뉴욕과 파리 베를린 서울을 위성으로 연결해 국내에 TV로 그의 예술세계가 소개되자 백씨는 한순간에 천재적 아티스트로 떠올랐다.


그는 1932년 7월20일 서울 서린동에서 태창방직을 경영하던 백낙승씨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중·고교를 나와 일본 도쿄대에서 미학과 음악사 미술사를 전공했다.


1958년에는 독일에서 음악사를 공부한 뒤 전자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의 예술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플럭서스'(삶과 예술의 조화를 기치로 내건 전위예술)운동의 창시자 조셉 보이스였다.


백씨는 1963년에 열린 첫 개인전에서 '장치된 비디오' 3대,'장치된 TV' 13대와 함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갓 잡은 황소머리를 전시했는데,개막일 조셉 보이스가 난데없이 도끼를 들고 나타나 전시 중인 피아노 한 대를 부서뜨린 것.


이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백남준은 예술의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전위예술가로 거듭나게 된다.


1986년 아시안게임 때는 인공위성 프로젝트인 '바이바이 키플링'을 만들어냈고 88년 서울올림픽 때도 인공위성쇼인 '세계는 하나'를 엮어내 천재성을 과시했다.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백씨는 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았고 독일의 경제월간지 '카피탈'지가 선정한 '현존 최고 미술가 100명'에 들어갔다.


김경갑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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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외 1000여점 소장 … 작품가격은 1억원선


지난달 29일 타계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은 어느 곳에 소장돼 있고 그 가치는 얼마나 될까.


그의 작품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독일 일본의 미술관과 화랑,기업들에 1000여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 백남준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은 경기문화재단이다.


경기도가 284억원을 들여 내년에 개관할 백남준미술관에는 '가장 오래된 TV''로봇K-456' 등 67점의 작품이 보관돼 있다.


백남준미술관은 개인 사물 3세트와 작품 제작을 위해 소장한 비디오 소스 2285점도 갖고 있다.


백남준 작품의 또 다른 소장처는 기업이다.


포스코그룹 본사건물 1층 로비에 들어서면 'TV깔데기'와 'TV나무'가 설치돼 있다.


1995년 작품으로 당시 3억5000만원에 들여왔다.


한국경제신문 사옥 1층 로비에서도 백남준의 1997년 작품 '다산과 한국경제'를 감상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피트니미술관,워커아트센터,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샌프란시스코 미술관 등이 백남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백남준의 작품은 대부분 국내 경매시장에서 점당 1억원 이하에 거래되고 있다.


2000년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첫 거래된 작품은 '4인도'로 당시 6400만원에 낙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