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가족자원봉사단 25명 보르네오 눔팍마을을 다녀와서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눔팍마을엔 '피터팬'이 되고 싶은 17세의 '래시'가 살고 있다. 검고 거친 피부에 맑은 눈을 가진 피터팬 옆에는 맨발의 8세 아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마을은 온통 바닷물에 실려 쓰레기가 널려져 있었다.
이번에 함께 떠난 모자,모녀,부자,부부,혹은 동료로 구성된 25명의 해외가족자원봉사단은 일면식조차 없는,사는 곳도 직업도 제각각이었다. 그럼에도 8박9일의 여정을 함께 하는 동안 우리는 가족 이상의 협동심과 배려를 보였다.
자원봉사에 나선 남자들의 주된 업무는 눔팍마을 학교의 나무다리 교체작업이었다. 계획에 없던 하수구를 만들어 물꼬를 트고 묻혀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젖은 땅을 다지느라 거친 삽질이 다시 시작됐다. 누군가 잠시 허리를 펴다 말고 열심히 일하는 양동명군(목동초등5)에게 눈치가 보였는지 이렇게 말했다. "군대 졸병시절보다도 훨씬 더 힘드네…." 스태프로 온 박종호씨(36·기아대책기구) 양미수씨(41·GS홈쇼핑) 전우정씨(27·GS홈쇼핑)는 물론 동행취재를 한 동정민 기자(27·동아일보)까지 망치와 삽과 톱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다리 보수와 하수구를 만드느라 땀에 절어있을 즈음 나를 애타게 찾는 곳은 이·미용팀의 통역이었다. 머리에 이가 득실대고 서캐가 하얗게 있어도 그들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은 따로 있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짧게 깎아달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가려워서 연신 북북 긁어 대면서도 결코 긴머리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교실 한켠에서는 의료봉사가 이루어졌다. 신용경 의사(42·서울시립병원 가정의학과)는 정식 약사와 간호사도 없이 하루 50~70명의 환자를 주부 4인방(이화정 이정화 권경희 김경숙)의 도움을 받으며 진료해 나갔다. 대부분 버짐과 피부병,감기,빈혈,영양실조 증세가 있었고 심한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평소 병원 출입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료진의 활동은 무엇보다 큰 선물이 됐다.
노창범 이정화 부부의 이번 해외가족 자원봉사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동안 기아대책을 통해 개인 후원을 했던 '아닐존 앙가존'(8)과 감격의 상봉을 했다. 앙가존의 집 거실엔 정화씨네 가족 사진과 지난해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가 잘 정돈돼 있었고,가난한 어부였던 앙가존 아버지는 다행히 운전사로 일하게 돼 수입이 세 배로 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우리는 어설프게 배운 말레이어 인사를 하며 가정방문을 나섰다. 삐걱거리는 나무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지나 콜라와 약간의 과자를 가지고 간 곳엔 네 명의 아이를 둔 눈 먼 엄마가 있었다. 이제 희미하게 형체만 볼 수 있다는 엄마의 고달픈 삶은 집안 곳곳에 배어 있는 악취만으로도 짐작이 가고 남았다. 돈이 없어 병원조차 가지 못하면서도 손님 대접을 한다며 음료수를 내놓았다.
어린 자식이 안내자가 돼주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는 눈 먼 엄마는 그래도 자신은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고 말했다. 자신은 문맹인 데 반해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 글을 읽고 쓸 수 있다고,그래서 한국인이 무척 고맙다고…. 눔팍소망학교는 2004년 4월 한국 기아대책기구에서 건축했고 300여명의 아이들 교육에 1 대 1 후원을 하고 있다.
우리의 잣대로 보면 한없이 안스러운 눔팍마을 아이들은 놀랍게도 20%가 흡연자다. 여섯 살짜리 흡연자도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 속에 낯선 이방인을 만나자 쿡쿡 치며 1링깃(300원)을 구걸하는 아이,아버지처럼 어부가 되는 것 외에는 꿈조차 없다는 아이들은 한국의 아이들에 비해 무척 왜소했다.
"준파라기"(또 만나자). 마지막 돌아오는 버스를 향해 맨발이지만 눈이 예쁜 눔팍마을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김봉철씨(43·롯데월드)는 아이들 틈에서 열심히 우리를 도와주던 피터팬을 찾아 힘껏 껴안았다. 모두들 코끝이 시려 왔다. 물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도 마실 물도,씻을 물도 부족한 그곳 아이들의 환경이 안타깝고 미래가 걱정됐다. 떠나기 전 일부는 지갑을 털어 후원했고 김동일군(민족사관고2)은 "훗날 눔팍마을 혹은 더 어려운 빈민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고 다짐이었다.
강지훈 생글기자(부산 건국고 2년) namisaboy@hanmail.net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눔팍마을엔 '피터팬'이 되고 싶은 17세의 '래시'가 살고 있다. 검고 거친 피부에 맑은 눈을 가진 피터팬 옆에는 맨발의 8세 아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마을은 온통 바닷물에 실려 쓰레기가 널려져 있었다.
이번에 함께 떠난 모자,모녀,부자,부부,혹은 동료로 구성된 25명의 해외가족자원봉사단은 일면식조차 없는,사는 곳도 직업도 제각각이었다. 그럼에도 8박9일의 여정을 함께 하는 동안 우리는 가족 이상의 협동심과 배려를 보였다.
자원봉사에 나선 남자들의 주된 업무는 눔팍마을 학교의 나무다리 교체작업이었다. 계획에 없던 하수구를 만들어 물꼬를 트고 묻혀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젖은 땅을 다지느라 거친 삽질이 다시 시작됐다. 누군가 잠시 허리를 펴다 말고 열심히 일하는 양동명군(목동초등5)에게 눈치가 보였는지 이렇게 말했다. "군대 졸병시절보다도 훨씬 더 힘드네…." 스태프로 온 박종호씨(36·기아대책기구) 양미수씨(41·GS홈쇼핑) 전우정씨(27·GS홈쇼핑)는 물론 동행취재를 한 동정민 기자(27·동아일보)까지 망치와 삽과 톱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다리 보수와 하수구를 만드느라 땀에 절어있을 즈음 나를 애타게 찾는 곳은 이·미용팀의 통역이었다. 머리에 이가 득실대고 서캐가 하얗게 있어도 그들이 원하는 헤어스타일은 따로 있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짧게 깎아달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가려워서 연신 북북 긁어 대면서도 결코 긴머리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교실 한켠에서는 의료봉사가 이루어졌다. 신용경 의사(42·서울시립병원 가정의학과)는 정식 약사와 간호사도 없이 하루 50~70명의 환자를 주부 4인방(이화정 이정화 권경희 김경숙)의 도움을 받으며 진료해 나갔다. 대부분 버짐과 피부병,감기,빈혈,영양실조 증세가 있었고 심한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평소 병원 출입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료진의 활동은 무엇보다 큰 선물이 됐다.
노창범 이정화 부부의 이번 해외가족 자원봉사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동안 기아대책을 통해 개인 후원을 했던 '아닐존 앙가존'(8)과 감격의 상봉을 했다. 앙가존의 집 거실엔 정화씨네 가족 사진과 지난해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가 잘 정돈돼 있었고,가난한 어부였던 앙가존 아버지는 다행히 운전사로 일하게 돼 수입이 세 배로 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다.
우리는 어설프게 배운 말레이어 인사를 하며 가정방문을 나섰다. 삐걱거리는 나무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지나 콜라와 약간의 과자를 가지고 간 곳엔 네 명의 아이를 둔 눈 먼 엄마가 있었다. 이제 희미하게 형체만 볼 수 있다는 엄마의 고달픈 삶은 집안 곳곳에 배어 있는 악취만으로도 짐작이 가고 남았다. 돈이 없어 병원조차 가지 못하면서도 손님 대접을 한다며 음료수를 내놓았다.
어린 자식이 안내자가 돼주지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는 눈 먼 엄마는 그래도 자신은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고 말했다. 자신은 문맹인 데 반해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 글을 읽고 쓸 수 있다고,그래서 한국인이 무척 고맙다고…. 눔팍소망학교는 2004년 4월 한국 기아대책기구에서 건축했고 300여명의 아이들 교육에 1 대 1 후원을 하고 있다.
우리의 잣대로 보면 한없이 안스러운 눔팍마을 아이들은 놀랍게도 20%가 흡연자다. 여섯 살짜리 흡연자도 있다는 충격적인 얘기 속에 낯선 이방인을 만나자 쿡쿡 치며 1링깃(300원)을 구걸하는 아이,아버지처럼 어부가 되는 것 외에는 꿈조차 없다는 아이들은 한국의 아이들에 비해 무척 왜소했다.
"준파라기"(또 만나자). 마지막 돌아오는 버스를 향해 맨발이지만 눈이 예쁜 눔팍마을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김봉철씨(43·롯데월드)는 아이들 틈에서 열심히 우리를 도와주던 피터팬을 찾아 힘껏 껴안았다. 모두들 코끝이 시려 왔다. 물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도 마실 물도,씻을 물도 부족한 그곳 아이들의 환경이 안타깝고 미래가 걱정됐다. 떠나기 전 일부는 지갑을 털어 후원했고 김동일군(민족사관고2)은 "훗날 눔팍마을 혹은 더 어려운 빈민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이고 다짐이었다.
강지훈 생글기자(부산 건국고 2년) namisabo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