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부산에서 폐막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선 인상 깊은 행사가 있었다.

각국 정상들이 우리 고유의 나들이복인 두루마기를 입고 기념 촬영을 한 것이다.

'두루마기'는 '두루 막다'란 말에 명사화 접미사 '-이'가 붙어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경우 어간의 본뜻이 살아있으므로 원형을 밝혀 '두루막이'로 적어야 한다는 일부 주장이다.

'손잡이 옷걸이 물받이 손톱깎이' 등이 모두 같은 유형으로,'두루마기'보다는 '두루막이'가 우리 맞춤법 정신에 맞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두루마기'로 적어오던 것으로,표기가 굳어진 지 오래다.

이는 모든 사전이 공통적으로 '두루마기'를 올림말로 처리한 데서도 확인된다.

이에 비해 모양은 비슷하지만 뜻은 전혀 다른 '두루마리'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종이 따위를 풀어서 쓸 수 있게 돌돌 만 뭉치'를 뜻하는 이 말에 대해선 국립국어원과 한글학회가 견해를 달리한다.

국어원(표준국어대사전)에선 '두루마리'를 표준으로 잡고 있는 데 비해 한글학회(우리말 큰사전)는 '두루말이'가 옳다고 주장한다.

물론 공식적인 표준어는 '두루마리'이다.

그럼 '계란말이'의 경우는 어떨까? 공교롭게도 두 사전이 공히 '-말이'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그점에선 한글학회의 견해가 좀 더 일관성이 있다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파생어 등 신조어는 꼭 문법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문법성을 중시하는 사람들에 의해 잘못 만들어진 말이라고 지적받는 대표적인 단어가 '도우미'다.

이 말은 1993년 대전엑스포가 열리기 전 공모를 통해 태어났다.

'도움을 주는 이'를 뜻하는 '도움이'를 발음 그대로 흘려 쓴 것.여기에다 '도움+우아함+미(美)'를 갖춘 사람이란 의미를 담아 앞글자만 따서 합성한 것이라 한다.

따라서 이 말은 상징화 과정을 거친 단어다.

'도우미'는 이후 보통명사화할 정도로 쓰임이 빈번해지더니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단어로 올랐다.

이보다 조금 앞서 1992년 S사가 내놓은 과자상품 이름 '누네띠네'가 히트를 치며 대중에게 알려진 것도 '도우미'가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브랜드 작명을 위한 회의에서 누군가가 "뭔가 눈에 띄는 이름이 없을까"라고 한 데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누네띠네'는 유행처럼 각종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는 방식의 기폭제가 됐다.

'도우미'가 말글살이에 뿌리내리게 된 것은 역설적이지만 전통적인 조어법을 일탈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신어의 탄생은 조어법의 잣대로는 풀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왕 새로 만드는 마당에 '도움이' 또는 '도울이'로 하자는 지적도 있었지만 결국 말이란 언중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다.

조어법에 어긋난다고 해서 우리말의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비판만 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