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살의 나이에 내가 세운 회사에서 해고당했습니다. 인생의 초점을 잃어버렸고 몇 개월 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거죠.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컴퓨터 혁명의 선구자 스티브 잡스(50)가 지난 6월 미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연설한 내용 중 일부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애플'의 신화가 '토이스토리'와 '아이맥','아이팟'의 성공으로 이어진 원동력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고난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그것이 잡스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Stay hungry,Stay foolish"란 말을 남겼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야 창조와 혁신이 가능하다는 역설이었다.

◆"나의 관심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소비자"

컴퓨터 업계의 '이단아' 잡스는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났다.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어린 시절 잡스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아이였다.

전기 소켓에 머리핀을 집어넣어 화상을 입는 정도는 예사였다.

에디슨을 닮은 듯했다.

10살 때부터 그는 특별히 전자 장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이 77년 친구 워즈니액과 함께 최초의 개인용컴퓨터(PC)인 애플을 세상에 내놓게 되는 계기가 됐다.

당시는 IBM으로 대표되는 대형 컴퓨터만 있던 시절.PC라는 개념을 머리에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었다.

잡스는 나이 스물다섯에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혁신은 멈추지 않았다.

84년 그는 그래픽환경을 처음 도입한 '매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였다.

'넥스트스텝'이란 독특한 운영체제(OS)도 개발했다.

이어 플로피 디스크가 아닌,아무도 쓰지 않는 광자기 드라이브(MOD)를 PC에 장착하는 모험도 감행했다.

MOD가 탑재된 PC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엄청나게 비싼 가격 때문에 제대로 팔리지는 않았다.

"나의 관심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소비자"라고 말하는 잡스를 떠올리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애플로 복귀한 iCEO

아무튼 그는 '돈'보다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기술'에 대한 욕심 때문에 애플에서 쫓겨났다.

10년간 '광야 생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잡스는 그러나 그 광야를 '신천지'로 바꿔놓았다.

조지 루카스로부터 필름애니메이션 회사를 사들여 픽사(Pixar)를 설립했다.

곧이어 애니메이션에 디지털의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에 들어갔다.

토이스토리(1995년) 몬스터주식회사(2001년) 니모를 찾아서(2003년) 인크레더블(2005년) 등 히트작이 대박행진을 이어갔다.

토이스토리는 컴퓨터만 이용해 만든 첫 3차원 애니메이션 작품.컴퓨터만으로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기 힘든 시절에 나온 혁신작이었다.

반면 잡스가 떠난 애플은 경영난이 심화돼 갔다.

잡스에 대한 반작용 때문이었을까.

'기술'보다는 '경영'과 '관리'에 치중한 탓에 애플 특유의 경쟁력이 고갈돼 가고 있었던 것.결국 애플은 잡스가 개발한 OS '넥스트스텝'을 얻기 위해 96년 넥스트(NeXT)사를 인수하면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잡스는 자신을 'iCEO'라고 칭했다.

임시(interim) CEO라는 뜻.그는 3년 만인 98년 10월 애플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같은 해 모니터와 본체를 하나로 만든 혁신적 디자인의 아이맥(iMac)을 선보였고 디지털음악플레이어 아이팟(iPOD)으로 자신의 플랜을 펼쳐보였다.

잡스는 2000년에 정식 CEO가 됐지만 여전히 iCEO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이제는 인터넷(internet) CEO란 뜻으로 말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제품에 문화를 불어넣어야"

곧잘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잡스는 빌 게이츠와 비교된다.

잡스는 96년 와이어드(wired)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일한 문제점은 미학이 없다는 것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려 하지 않고 제품에 문화를 불어넣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슬퍼지는 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성공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문제는 그들이 3류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독설을 내뱉기를 즐겼던 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또한 잡스와 애플이 과연 무엇을 향해 전진하고 있으며 디지털 시대 소비자들에게 무엇을 제공하려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