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 나오는 신 야훼(Yahweh)가 유대교 신앙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지금의 이스라엘)을 너와 네 후손에게 준다"고 약속한 시기는 기원전 2000년 전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인도한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넘어온 때는 기원전 13세기로 추정된다.

모세와 유대민족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비슷한 시기에 해양민족인 필리스틴(팔레스타인의 선조)이 가나안의 남부해안 지역으로 이주해왔다.

그때부터 두 민족 간 영토분쟁이 시작됐다.

기원전 1020년쯤 건국한 이스라엘 왕국은 주변의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멸망했고,이후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후 135년 유대인들은 가나안에서 쫓겨나 떠돌이 민족으로 살았다.

가나안에 남은 일부 유대인들과 대부분의 필리스틴 후손들은 큰 분쟁 없이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함께 살았다.

◆영국의 이중 외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분쟁에 도화선을 제공한 것은 영국이다.

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제국(터키)과 격렬한 전투를 치른 영국은 전쟁 승리를 위해 꾀를 썼다.

전쟁 비용과 신병기 개발을 유대인 재벌에게 부탁하고 군인들은 오스만제국에 예속돼 있던 아랍의 하심가에 의뢰해 모집했다.

그 대가로 유대인들에게는 가나안에 국가를 건설할 수 있도록 인정하겠다고 선언(발포어 선언)했고,하심가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 독립국가를 창설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가나안과 팔레스타인은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지역이다.

영국은 대단히 이율배반적인 약속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영국은 전쟁 후 유대인들이 대량 이주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줌으로써 사실상 이스라엘 편에 섰다.

◆네 차례의 중동전쟁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유대인 이주민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반발하는 아랍민족의 저항도 격화했다.

그러자 영국은 1947년 4월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UN)에 넘겨 버렸다.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과 유대인 지구로 분할했다.

아랍측은 이를 거부했다.

반면 유대인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1948년 5월14일 텔아비브를 수도로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때부터 아랍국가들은 이 문제를 팔레스타인 문제로만 한정하지 않고 '이슬람에 대한 유대교의 도전'으로 간주했다.

이스라엘 건국 다음 날인 5월15일 이집트와 시리아,요르단,레바논,이라크로 구성된 아랍 연합군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1차 중동전쟁이었다.

아랍은 이후 세 차례 더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나 연이어 패배했다.

그 결과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시나이반도,골란고원 등을 빼앗겼다.

◆민중봉기 '인티파타'

이스라엘은 이후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짓기 시작하면서 팔레스타인과 극한 대립을 벌였다.

팔레스타인의 마지막 영토였던 두 지역을 유대인들이 야금야금 갉아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슬람 무장세력들은 폭탄테러와 자폭테러로,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측에 돌을 던지며 저항하는 인티파타로 맞섰다.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 정착촌에서 유대인들을 철수시킨 것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바꾸는 데 계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평화의 서막일지,아니면 또 다른 분쟁의 시작일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김호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