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이 유대인을 쫓아냈다?"

이스라엘 정부가 서(西)아시아 팔레스타인 남서쪽에 있는 가자(Gaza)지구에 정착해 있는 자국민을 강제로 철수시켰다.

수난과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았고,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지내면서도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민족의식을 유지해 온 이스라엘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번 조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땅을 되돌려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해서 중동 지역에 평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는 3000여년 전으로 올라간다.

"하나님이 약속한 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이스라엘과 "선조들이 살고 있었던 땅을 빼앗길 수 없다"는 팔레스타인의 영토 다툼이 분쟁의 출발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수많은 화해조약을 맺기도 했지만 총성은 그치지 않고 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종교 갈등에다 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구사한 이중 외교 플레이의 후유증 등으로 더욱 꼬여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내막으로 들어가보자.

가자지구 철수를 주도한 인물은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77)다.

그는 철수에 반발하는 자국민을 끌어내기 위해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진압했고,염산까지 뿌렸다.

따라서 샤론 총리는 평화주의자,혹은 온건 노선을 걷는 협상론자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샤론은 매우 호전적인 전사였다.

별명도 불도저다.

1967년 중동전쟁 때에는 탱크를 몰고 나가 이집트를 공포에 몰아넣기도 했다.

82년 시리아와의 전쟁 때에는 레바논 베이루트로 진군해 민간인 2000명을 학살,세계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2001년 1월 총리로 취임한 뒤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 악명을 떨쳤다.

그런 그가 갑자기 평화주의자가 된 것일까.

중동문제 전문가들은 강경 보수주의자가 갑작스럽게 변신한 것이 아니라,다른 더 넓은 영토를 확실하게 보장받기 위한 '실용주의 정책'을 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남북 길이는 40km,너비는 8km,총 면적이 363㎢에 불과한 아주 작은 땅이다.

이스라엘은 38년 전 중동전쟁에서 승리한 뒤 이 땅을 차지했다.

이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21개 정착촌을 건설했고,정착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9개 군기지도 마련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은 끝없는 반발을 초래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땅에서 쫓겨난 뒤 난민촌에서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끊임없이 저항했다.

가자지구는 과격 무장단체의 거점이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었는데,땅이 너무 작아 투입비용만큼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서방세계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유럽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경제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했다.

미국도 유대인 정착촌을 철거하라고 압력을 행사했다.

이스라엘은 서방의 압력도 피하면서 정착촌 유지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스라엘의 본심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곳은 또 다른 점령지인 요르단강 서안(west bank)과 동(東)예루살렘이다.

요르단강 서안지역은 면적 5310㎢로 가자지구에 비해 15배나 크고 이스라엘 정착촌도 120곳에 달한다.

동예루살렘은 성지이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절대로 내줄 수 없다는 게 이스라엘측 생각이다.

국제사회의 거센 압력과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 유대인 정착촌에 분리장벽 건설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동 전문가 아론 핀카스는 "정착촌 철수로 샤론 총리의 팔레스타인 협상 전략이 바뀐 것은 절대 아니다"며 "비용만 많이 들어가고 얻는 것이 없는 가자지구를 포기하고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되 요르단강 서안의 지배력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 이스라엘 정부의 숨은 의도다.

샤론 총리는 강경 보수주의자로 분류되지만 냉철한 실용주의자라는 평가를 함께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팔레스타인도 양보할 의사가 없다.

한 평의 땅이라도 아쉽기 때문에 가자지구 철수를 반기고 있을 뿐 요르단강 서안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번 철수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서안 지역과 동예루살렘을 되찾아 독립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팔레스타인 최대 무장단체인 하마스도 강제 점령당한 모든 영토를 회복하기 전까지 총을 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공방은 앞으로도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동 평화를 위해 건너야 할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중동 평화를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

김남국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