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통계] 10. 우연의 일치 같은 것은 없다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보다 더 흔하게 일어나는 것이 우연의 일치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연의 일치가 일어나기 힘든 일이라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그것이 쉽게 발생할 수도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망각한다.


더욱이 수(數)문맹인 사람들은 우연의 일치에 매혹(?)당하여 거기에 꼭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한다.


심지어 우연의 일치를 자신의 세계에서 효력이 있는 어떤 놀랍고 불가사의한 조화의 증거로 간주한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프로이드는 "우연의 일치 같은 것은 없다"고 단언했고 같은 심리학자인 융은 우연의 불가사의한 신비에 매료당했다.


인간관계가 복잡해짐에 따라 현대인들은 우연의 일치가 갖는 불가사의한 측면에 더 관심을 갖는다.


남녀 간의 관계에서 우연의 일치는 필연으로 받아들여진다.


같은 색깔을 좋아한다든가 취미의 일부분이 같기만 해도 천생연분의 계시로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야말로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노래가 절로 나온다.


소설 속에서도 우연은 우주의 섭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인간의 힘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것의 진실은 우주와 인간 사이에 묵계된 영원한 약속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만 비로소 이해된다.


나는 이 일들을 통틀어 섭리(攝理)라고 부른다.


섭리의 법칙을 아는 사람은 우연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주의 질서와 우주가 베푸는 은혜 속에는 우연이란 실수는 없다."(양귀자,천년의 사랑,1995)


오직 우연만이 메시지로서 이해될 수 있다.


필연성에서 발생하는 것,예측할 수 있는 것,매일 반복되는 것에는 메시지가 없다.


오직 우연만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 준다.


우리는 우연에서 마치 집시 여인들이 커피 잔의 밑바닥에 그려진 무늬를 보고 점을 치듯 무엇인가를 읽으려 애쓴다.


"그 호텔 식당에 토머스가 나타난 것은 테레사에게는 절대적 우연의 계시였다.


그는 책을 앞에 펴두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테레사를 쳐다보고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코냑 한 잔 줘요!' 이 순간 음악이 라디오에서 울려나왔다.


테레사는 코냑을 가져오기 위해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라디오 소리를 더 크게 하려고 스위치를 돌렸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베토벤의 곡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녀가 주문한 코냑을 카운터에서 토머스가 앉아 있는 탁자로 가져오는 동안 그녀는 이 우연에서 무엇인가를 읽으려 애썼다.


그녀가 자기의 마음이 끌리게 하는 알지 못하는 이 남자에게 코냑을 갖다 주고 있는 지금 하필이면 베토벤 곡을 듣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95)


대부분의 종교는 우연을 신의 섭리나 우주의 질서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불교의 중요한 사상 중 하나는 연기설(緣起說)이다.


연기설이란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이론 속에는 세상에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며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길을 지나다 옷깃을 스치는 가벼운(?) 일마저도 전생에서는 오랜 기간(억겁·億劫) 아주 가까운 인연이었어야만 있을 수 있는 무거운(?) 인연이라고 불교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무한히 반복되는 파이의 값에서 우연이 많이 발견된다.


원주율은 원 둘레를 원의 지름으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파이는 원의 넓이를 계산할 때 상수(constant)로 취급한다.


그러나 파이는 그 값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는 무리수다.


따라서 수천년 전부터 사람들은 얼마나 정확하게(소수점 몇 자리까지) 파이의 값을 계산할 수 있느냐에 관심을 보였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수학자가 이 계산을 위해 일생을 바쳤으며 어떤 학자는 파이의 계산이 "수학자들이 결코 싫증내지 않는 놀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파이의 정확한 계산은 동시대 수학적 지식의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로 평가되고 있다.


고대 헤브류인들은 솔로몬의 신전을 지을 때 파이의 근사치를 정밀함이 떨어지는 3으로 계산하여 사용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이의 근사치로 7분의 21을 대단위 토지 측량과 건축에 사용했다.


피타고라스 역시 이 값을 이용했으며 오늘날에도 7분의 21은 파이의 근사치로 대부분 계산에서 사용되고 있다.


컴퓨터가 발달한 현대에도 더 정확한 파이의 값을 계산하려는 수학자들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소수점 이하 몇 천만 자리까지 계산했다는 뉴스가 가끔씩 신문에 실린다.


파이를 소수점 이하 20 자리까지 적으면 3.14159292035398230088이다.


파이의 값은 소수점 이하에서 일정한 규칙 없이 임의로 계속된다.


이 말은 소수점 아래에서는 아무런 규칙 없이 숫자들이 전개된다는 말이다.


이 속에서 어떤 규칙성을 발견하려고 많은 사람이 애썼지만 다 실패했다.


그런데 이런 불규칙성 속에서 가끔씩 같은 숫자들이 잇달아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예를 들어 소수점 이하 710,155 자리부터 3333333,즉 3이 계속 7번이나 반복되어 나타난다.


또 4444444,8888888,1212121,12345671 등의 숫자가 나오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불규칙 속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을 어떤 조화의 결과로 보고 이 숫자들이 주는 계시를 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나 끝도 없이 반복되는 숫자 속에서 어떤 숫자가 계속해서 7번이나 나온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일 뿐이다.


마치 주위에서 딸만 일곱을 둔 7공주집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파이의 예에서 알 수 있듯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일어나는 놀랄 만한 우연의 일치는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사건일 뿐이다.


오로지 우연에 의해 일어난 현상에 작용한 것은 불가사의한 조화나 섭리가 아니라 그저 우연이라는 변수뿐이다.


그렇게 많은 우연의 일치에 대해 세상은 어떤 직접적인 설명을 해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연 이외의 근거와 힘을 가정하는 것은 일종의 심리적인 착각인 것이다.


만일 정말로 불가사의한 우연의 일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연의 일치가 우연히 모두 사라지는 것"뿐이다.


김진호 교수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