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로프라이스 창업..토머스 로 프라이스] 38년동안 27000% 수익

학자가 논문으로 평가받는다면 펀드매니저는 수익률로 평가받는다.그런 점에서 토마스 로우 프라이스(Thomas Rowe Price)는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로 꼽힌다.그는 38년동안 2700%라는 투자수익률을 기록했다.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이 10여년동안 300%의 수익률을 올린 것과 비교하면 경이적이다.프라이스는 지난 6월말 현재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세계 10여개국에서 무려 200조원이 넘는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T.로우프라스의 창업자이다.


◆예언의 승리


프라이스는 기업에 대한 분석 뿐만 아니라 기술과 경제의 흐름을 읽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왔다.


그는 정치·경제·사회 등 시대의 흐름을 분석하고 투자방향을 정한 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성장주를 발굴해 많은 수익을 냈다.


그의 투자성과에 대해 미국 언론은 '예언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프라이스는 '성공적인 투자자는 변화를 예측하고 대처하는데 유연성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정치·경제적 추세와 산업·기업의 추세는 주식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봤다.


그의 투자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시대에 따라 다른 종류의 성장주에 투자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대부분의 전문투자자들은 철도나 자동차회사같은 경기에 영향을 받는 주식들을 사들였다.


그러나 프라이스는 성장주에 주목했다.


블랙앤드데커 3M 머크앤드컴퍼니 등이 그가 주목한 주식들이다.


블랙앤드데커는 35년 동안 8540%,3M은 33년 동안 1만7025%,머크앤드컴퍼니는 31년 동안 2만3666%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프라이스는 1940년대 말 컴퓨터의 미래를 확신하며 IBM의 주식을 샀고 1960년대에는 제록스 모토로라와 텍사스인스투르먼트(TI)에 투자했다.


당시 이들 주식은 요즘으로 말하면 구글이나 이베이같은 첨단 기술주다.


1960년대까지 투자전문가들은 규모가 작고 설립된 지 얼마되지 않은 회사의 주식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미래가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라이스는 이 같은 통념을 뒤엎고 성장 초기의 기업들에 투자했다.


그는 미래 비즈니스의 리더가 될 잠재력이 있는 회사들을 사모으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제록스 주식은 프라이스가 12년간 보유했는데 6184%라는 경이적인 수익률을 안겨줬다.


그가 얼마나 경제 흐름을 읽는데 탁월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일화가 있다.


그의 투자패턴은 본래 성장주를 사서 장기간 보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그는 다른 투자전략을 선택했다.


당시 미국은 월남전에 참전했다.


프라이스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수년간 주식시장은 약세장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연방정부는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기 어려웠다.


전쟁반대론에 힘을 실어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연방정부가 돈을 찍어내 전쟁비용을 댈 것이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프라이스의 분석이었다.


그는 철이나 광물 삼림 석유 토지 등 천연자원을 소유하거나 개발하는 회사들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가 투자한 회사들은 애틀랜틱리치필드(석유),앨칸알루미늄(알루미늄),홈스테이크마이닝컴퍼니(금),인터내셔널페이퍼(삼림) 등이었다.


그는 또 가장 환금성이 뛰어나면서도 가치가 변하지 않는 금을 1온당 35달러일 때 대량으로 매입했다.


그의 예측은 1970년대 중반에 현실로 나타났다.


73년과 74년 미국의 주가지수는 45%나 폭락했다.


73년과 74년 물가상승률은 각각 8%,12%에 달했다.


이런 여파로 금값은 1975년에 온스당 300달러로 올랐고 1980년에는 85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의 생애


프라이스는 1898년 메릴랜드주 글린든(Glyndon)에서 태어났다.


그는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다국적 기업인 듀퐁에 취직했다.


듀퐁에서 기업의 재무보고서를 분석하는데 흥미를 느껴 곧바로 증권사로 직장을 옮겼다.


그는 신상품이나 신기술을 보유한 업체 중에서 경영이 잘되고 있는 회사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그는 주식을 저점에 사서 값이 오르면 빨리 팔아야 한다는 당시의 통념을 깨고 신중하게 선택한 뒤 장기간 보유하는 쪽으로 투자했다.


1937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T 로프라이스사를 창업했다.


이 투자회사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수수료가 없는(no-load) 펀드였다.


고객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자산을 관리해 주다가 고객들이 만족한 결과를 얻으면 돈을 받는 방식이었다.


프라이스의 투자전략은 빈틈없이 들어맞았고 그는 곧 고객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프라이스는 1950년에는 첫번째 뮤추얼펀드를 만들어 10년 만에 500%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다.


T 로프라이스사는 70년대 중반 이후 주식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채권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1976년에는 MMF(Money Market Fund)를 만들어 단기채권에 투자,높은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이 회사는 현재 세계시장에서 200조원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으며 지난해 자금운용으로 3억3700만달러(약 3500억원)를 벌어들였다.


프라이스는 1970년대 중반 회사를 은퇴했고 1983년 세상을 떠났다.


김태완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twkim@hankyung.com